길 위의 점자 블록
얼마 전 우연히 SNS 서핑을 하다가 게시글 하나를 봤다. 일본 드라마 <사랑입니다 양키 군과 흰 지팡이 걸>의 스토리를 영상 캡처와 함께 설명해 놓은 글이었다.
오늘 출근을 하면서, 익숙한 길을 걸었다.
영등포 구청 역. 5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역사 내 긴 통로를 걸어가는데 문득 바닥에 시선이 갔다. 오돌토돌 노란색의 점자 블록들. 문득 얼마 전에 봤던 SNS 게시글이 생각났다.
드라마를 요약한 글에는 여 주인공이 인도 위 점자 블록에 대해 설명하는 씬이 있었다. 오돌토돌 하게 올라온 둥근 점자 블록은 일단 멈추라는 뜻이며 직선 형태의 점자 블록은 방향에 따라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거라고 했다.
알고 나니 보였다. 내가 늘 보고 넘기던 게 누군가에겐 얼마나 중요한 의미 있는 지. 별생각 없이 익숙하게 넘기던 걸 그제야 '의식'하기 시작한 거다.
마침 출근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점자 블록을 따라 걸었다. 발 끝에 감각을 집중해서 한 발짝 한 발짝 따라 걸었다. 보이는 이들의 동선과 얽히지 않도록, 안전하게 직각 형태로 이어지는 길을 걷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점자 블록이 어떻게 경고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커브를 설명하는지, 뭐가 불편하고 뭐가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따라 걸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한 것들도 생겼다. 계단 앞 둥근 점자 블록, 계단 끝 라인의 사포 재질 테이프, 그리고 다시 직선 형태의 점자 블록까지는 따라갈 수 있겠는데 지하철의 출입문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경고성 둥근 점자 블록이 스크린 도어 라인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긴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타고 내리는 순간일 텐데.
지하철에서 내린 후, 야외의 인도를 걸어가는데 마모된 블록이 눈에 들어왔다. 발 끝으로 바닥을 그어보아도 느낌이 없었다. 불편하고 위험할 것 같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게 의식이 되면서 다시,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떤 이들은 길 위의 샛노란 점자 블록이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며 없앨 것을 요구했다는 데, 과연 그런 태도가 옳은 걸까 고민하게 됐다. 모두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지만 그 미관이라는 게 어떤 이의 삶 보다 중요한 걸까.
익숙하게 보던 것이 낯설게 느껴지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주변에 무관심했는지 깨닫게 됐다. 반성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변화는 '의식'에서부터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