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다섯

얼굴에 복이 많으시네요!

그놈의 2인조

by 흐를일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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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는 길, 날씨가 좋았고 바람은 선선했다. 에어팟을 통해 들려오는 공간 음향은 놀라울 만큼 완벽했고 매일 딱 이만큼만 기분이 좋았으면 싶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뭔가 싶어 에어팟을 빼려는데 익숙한 질문이 들려왔다.


"얼굴에 복이 많으신 거 알고 계세요?”


에어팟을 빼지 않았다.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어쩜 저놈의 질문엔 발전이 없나. 나는 살짝 목례하고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대화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인조로 구성된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로봇 같기도 했다. 해야 할 말을 결국 해내는 로봇.

그들은 신호등이 바뀌고 내가 움직이기 전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고, 나는 노래의 음향을 높였다.


신호등이 바뀌고 건널목을 건너고 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내리꽂혔다. 완벽했던 내 순간이 방해받은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았는데, 기분이 나빠졌다.



- 2 -


다음 날, 퇴근하는 길. 생리통이 심해서 끙끙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얼른 집에 가서 약을 먹겠다는 생각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시야 앞으로 누군가가 확 들어왔다. 순간 그와 부딪힐 뻔한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파악했다. 날 가로막은 사람 옆에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우물쭈물 주변을 살피며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 사람. 그랬다. 또 다른 2인조의 등장이었다.

더 상황을 파악할 필요도 없었다. 에어팟을 그대로 두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2인조를 지나치려는데 이런 말이 들려왔다.


"스트레스가 많으신가 봐요. 대학생이세요?“


목청이 어찌나 큰지. 에어팟 너머로 그 소리가 들리는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들은 나를 따라오며 말을 걸었고 결국에는 날 선 목소리로 더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야 물러섰다.


”아, 제발 좀 가세요. 관심 없다니까요?”


요통이 더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 민망함 때문인지 생리통 때문인지, 식은땀이 났다.



- 3 -


그리고 오늘. 출근하는 길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몸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아침에 못 먹은 진통제를 회사에서 먹을 요량으로 급하게 움직이는데, 누군가 내 앞을 막았다.


“이 동네 분이세요?”


뭐지 싶어 보니 또 2인조다. 이놈의 2인조는 전국에 수백 세트가 있나 보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내가 이 동네 사람이든 아니든 너희가 무슨 상관인데. 난 성수 사람이 아니고, 한 시간 걸려서 여기 왔고 지금 몸이 안 좋아서 빨리 가고 싶으니까 제발 좀 내 앞에서 꺼져 줘>를 축약해 눈빛으로 쏘아댔다. 피곤함과 짜증이 몰려왔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다. 그 어느 때보다 격하게. 그렇게 대답 없이 그들을 지나쳐 앞으로 가는데 뒤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저희 절에서 왔는데요~ 신천지 아니고 (SDF...@$)"


욕지기가 올라왔다. 가지가지한다.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괜히 손을 씻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데 기분이 이상해졌다. 거울에 비친 내가 독해 보였다. 공격적인 아우라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들이 설령 신천지라고 해도 내가 이렇게 공격적일 필요가 있었나. 3일 연속 같은 질문을 들었더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나. 그 사람들은 절에서 왔댔는데 괜한 편견 때문에 사람을 궁지에 몰았나.

왜 이렇게 공격적으로 대했나. 조금 더 예의 있게 거부 의사를 밝힐 수는 없었을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옳든 그르든) 신념을 갖고 포교 활동을 하는 걸 텐데,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선을 지킬 수는 없었나.

이런 식으로 타인을 공격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정말 필요한 순간 내가 누군가의 용기를 무시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혐오’ 기반의 정서를 갖고 있었던 건가.


생각이 많아졌다. 공격적인 나를 마주하는 건 썩 달가운 일이 아니라, 이런식으로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표출한 날이면 늘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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