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다섯

간만에 쌍욕을 했다

뒷담화의 후유증

by 흐를일별진



규칙이라는 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것도 내가 스스로와 약속한 게 이렇게나 발목을 잡을 줄이야. 인간의 캐릭터는 입체적이라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이 말이 추측형인 이유는 자꾸만 내가 무언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또다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됐다. 단순한 미움이라기보다는 동료의 무능력에서 오는 답답함이다. 자기방어 기제가 상시 발동된 사람. 잘못을 피할 구석을 찾기 위해 수시로 선택권을 남에게 넘기는 행위. 내가 경계하는 모든 행동을 한 번에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회사에 친분을 쌓으러 간 건 아니니 결국 일만 잘하면 되는데, 그 기본적인 일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이번엔 그(녀)가 내 후배에게도 자기 일을 떠넘기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진짜 속에서부터 염증이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쌍욕이 튀어나왔다. 또박또박 완벽한 딕션으로 시발년을 외쳤다.

한바탕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그 사람의 인격적인 부분이야 소위 유리멘탈이라 포장할 수는 있겠지만 일로 사람을 치진 말아야지. 자기가 심약하다고 남이 유치원 선생님 빙의해서 하나 하나 예쁜 말로 가르쳐야 하나. 회사는 학원이 아닌데. 왜 일을 못하는 사람들은 본인을 돌아보지 못하고 남탓만 하는 걸까. 왜 정작 바뀌어야 할 사람은 바뀌지 않고 그 주변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나. 모르면 인정이라도 하던가. 능력은 없으면서 자존심만 강하니 변명이 늘어나고, 온갖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니 정작 봐야 할 부분은 뒷전이다. 분노에 차서 온갖 말을 쏟아냈고 그 무렵엔 시원했다. 나만 분노에 차 있던 게 아니니까.


이후 지하철 안. 나는 퇴근길 내내 찝찝함을 느꼈다. 그 사람을 욕했던 모습들이 내게는 없었을까.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보고 있진 않을까. 내가 그렇게 타인을 욕할 자격이나 있나. 하지만 정말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 뻔하긴 했는데. 현장에서 몇 번이나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생기면서


(...)


나는 그(녀)의 무능력이 싫은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피해 보는 게 싫은 걸까. 나 또한 책임을 지기 싫어서 그 사람과 기 싸움을 벌이는 걸까. 이렇게 화를 내고 욕을 한다 한들 결과적으로 나는 당분간 회사에 나가야 하고, 작가팀의 메인이나 돼서 감정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를 썩힐 순 없다. 일은 일이니 결국에는 웃어야 한다. 웃으며 고생했어요, 우리 잘했어요. 인사를 해야 한다. 그렇게 쌍욕을 해놓고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아아 그 자체가 벌써 피곤하고 또 피곤하다.

가능한 어른스럽게 대처하고 싶은데, 자꾸만 치졸한 나를 마주하게 되니 감당이 안 된다. 솔직히 욕을 해서 찝찝하다기보다는, 뒤에서 신명나게 욕을 하고 앞에서 웃음을 보일 내가 찝찝하다. 위선. 위선이다.


타인을 화두에 올리지 않겠다, 타인을 평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선 이렇게 빨리 규칙을 깨버리다니. 애초에 규칙이라는 걸 정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나. 온갖 사람 다 모인 회사에서 뒷담화는 필요악인가. 아아 깨끗한 사람이 될 순 없지만 그래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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