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는 행위의 위험함
상황이 닥쳤을 때 어딘가 언짢은 기분이 들었으나 뭐라 말하기는 애매한 상황이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될 순 없다는 핑계로, 물 흐르듯 상황을 넘기고 나면 마음 한쪽에 어둠이 싹튼다. 그 어둠은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싹을 틔우다, 이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하루를 되돌아본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낮 동안의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면서 뒤늦게 분노가 차오른다. 곱씹어 보는 행위의 위험함이다. 곱씹어보다 보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함과 동시에 감정이 폭주한다. 상대방의 액션이 떠오르고 그 액션이 기분 나쁜 행위임을 알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내가 싫어진다. 그때 이렇게 말할걸. 둘이 남았을 때라도 해야 할 말을 했야 했는데.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화를 낸다. 이 마음을 표현해 볼까. 지금이라도 생각을 정리해서 대화를 시도해 볼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난 일을 꺼내는 건 폭탄을 던지는 행위다. 잘못된 타이밍의 폭탄은 반발심만 키운다. 그래, 그런 건 옳지 않다. 다음에 한 번 더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 제대로 이야기하자.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지만 한 번 떠오른 생각은 멈출 줄 모른다. 이상은 쿨하고 멋진 사람인데, 현실의 나는 그냥 꽁-해 있는 인간이다. 결국 혼자 그 상대의 말과 행동을 씹고 뜯고 맛보고 끊임없이 분석하면서 그 사람을 최악으로 만든다.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당장이라도 손절할 수 있을 것처럼 안 좋은 점만 확대해서 떠올린다. 더 나아가 상대를 세워놓고 내가 할 말을 다다다 쏟아내는 모습까지 상상한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지느냐. 아니. 감정엔 변화가 없다. 그래 놓고 다음 날 막상 웃는 얼굴을 마주 하면 오늘의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지겠지. 그때까지도 꽁한 마음으로 있는 건 좀 소심해 보이니까, 상대가 나에게 친근하게 행동하니까.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일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안다. 그렇게 어물쩡 넘어간 상황은 분명 다시 한 번 반복될 거다. 왜냐, 지금 일어난 일도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매번 같은 고민을 하게 되겠지만, 대화의 타이밍도 중요하기에 그저 오늘을 기억할 뿐 담아두진 않을 거다. 그래야만 한다.
일단 오늘의 감정은 찰나일 뿐이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다만 감정을 담아두고 곱씹으며 땅굴을 파는 행위는 좋지 않다. 나에게 안 좋은 일을 굳이 사서 할 필요는 없지.
마음이 산만할 땐 음악을 틀고 글을 쓴다. 날 객관화 한다. 한 글자 한 글자, 나를 옮기면서 감정을 마주한다. 그렇게 쏟아낸 후 유튜브의 짧은 영상들을 본다. 자극적인 사건들만 골라서 본다. 이런 일도 있네 저런 일도 있네, 웃고 공감하며 몇 개의 영상을 보고 나면 내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제야 화가 가라앉고 끓어오르던 감정이 차게 식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