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병원에 혼자 두고서
6월 6일.
무슨 정신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울다 자다 다시 울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오전 10시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곧장 입원실로 가서 대근이를 만났다. 늘 내 옆에, 방 어딘가에 늘어져 있던 대근이가 작은 산소방에 누워있었다. 힘없이 숨 쉬고 있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미어졌다.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며 “대근아”하고 이름을 부르자 아이의 동공에 미세한 반응이 보였다. 다행히 동공의 크기 차이가 심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양쪽이 비슷해져 있었다. 다만 혈뇨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고,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아직 저혈압과 저체온도 그대로인 상태라고 했다. 대근이의 멘탈을 위해서는 내가 강해져야 했다. 그래서 대근이를 보고 살짝 웃었다. “내 새끼 조금만 더 힘내자. 잘하고 있다. 누나는 선생님 보고 올게” 간절한 마음으로 내 목소리를 전한 후 입원실을 나섰다.
이윽고 대근이의 담당 외과 전문의를 만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대근이의 골절 상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수술이 필요한 상황인데 고양이의 경우, 수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의 정신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수술하려면 마취를 해야 하는 데 현재 대근이의 상태가 마취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거였다. 내부 출혈은 없는 상황에서 혈뇨를 계속 보고 있기에, 당분간 지혈 기능이 있는 수액과 뇌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을 투여해가며 상황을 봐야 한다고 했다. 외과의가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바로 뇌 손상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나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확인을 위해 뇌 CT를 찍어볼 수 있지만, CT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당장 처치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일단은 아이의 차도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기도했다.
아이가 살아나기만 한다면, 어딘가 몸이 불편해도 내가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그러니 무엇을 해서라도 아이를 살려주기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의과 의사는 온종일 대근이를 살펴보며 최선을 다해 아이를 치료하겠다고 했고, 나는 여전히 불편한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더는 병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병원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대근이를 한 번 더 만났다. 여전히 힘이 없어 보이는 대근이의 눈을 바라봤다. 미간을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내 손길에도 큰 반응이 없었다. 무서웠다. 본능적으로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될 가능성을 염두 하는 것 같은 내가 미치도록 싫었다. 한참을 작은 산소방 앞에서 서성거렸다. 차마 밖으로 나가질 못해서 몇 번이나 뒤돌아봤다. 제발 버텨주기를 바라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다.
하루가 길었다. 대근이에게 아무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 침대에 누워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을 텐데. 대근이는 배를 내어주고 나는 그 배를 만지며 나지막이 노래를 읊조렸을 텐데.
늘 그랬다. 대근이는 내 손길을 느끼며, 내 노래를 들으며 행복한 듯 가늘게 눈을 뜨다 잠들었다. 가끔은 너무 잘 자는 대근이가 얄미워 장난치듯 아이의 배에 내 얼굴을 파묻었다. 숨을 깊게 들이켜면 대근이의 체취가 났다. 햇볕에 잘 말린 빨래 냄새. 가끔 나는 내 화장품 냄새. 살짝 고개를 돌려 귀를 가져다 대면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보면 대근이의 참을성이 바닥이 나, 아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캣타워 위로 올라갔다. 나는 캣타워 나무판 사이로 삐쭉 나온 대근이의 발을 보며 히죽- 웃었다. “대근아” 부르면 아이는 얼굴만 빼꼼 내밀고는 날 지그시 바라봤다.
대근이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보채는 일이 없었다. 배가 고파도 간식을 먹고 싶어도, 내가 자신을 볼 때까지 날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근이의 시선은 늘 날 향해 있었다. 난 그런 아이의 시선이 익숙했고 행복했다.
침대에 혼자 누워 집을 둘러볼 때마다, 대근이가 생각났다. 아니, 한 몸처럼 떠올랐다. 사람이 주는 큰 존재감이 아닌 작고 포근한 존재감. 그 존재감은 집 어디에나 있었다. 작은 아이가 머문 자리는 온 구석에 온기를 남겨서, 대근이가 곧 내 방이기도 했다.
여전히 날씨는 더웠으나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선 또다시 ‘쿵’하는 소리가 반복 재생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엎드려 누워 소리를 질렀다. 가슴을 때리고 머리를 때리고 허벅지를 때렸다. 미친 듯이 슬펐다가 미친 듯이 화가 났다. 왜, 나는 왜 방충망을 닫지 않았던가. 늘 내심 불안함이 있었으면서 왜 아이를 믿었는가. 아니, 믿는다는 핑계로 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나.
우리 집 창문은 오피스텔 창문이다. 옆으로 여닫는 형식이 아닌 아래쪽을 밀어 세모꼴 형태로 창문이 열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놓으면 일종의 텐트처럼 좁은 공간이 만들어진다. 창텐트 아래론 20cm가량의 외부 창턱이 있다. 외부 창턱은 좌우 옆집과 연결되지 않고 각 집 창문에 맞게끔 길이가 맞춰져 있다. 창문의 구조상 방충망을 열지 않으면 제대로 환기가 되지 않았다. 대근이의 털이 방충망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청소 루틴은 늘 방충망을 열고 시작되었다. 그럼 대근이는, 늘 몸의 반을 창틀에 걸쳐 놓고 얼굴만 밖으로 내놓은 채 바깥에서 들어오는 냄새를 즐겼다. 가끔은 창턱에서 식빵을 구우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늘 내 시선 안에 있었고 벌써 몇 년 동안이나 우리의 루틴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근이는 돌발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도 아니었거니와 집 선반 곳곳에 올려놓은 장식품을 건드리거나 떨어뜨린 적도 없었다. 사람으로 치면 지정된 루틴을 반복적으로 따르는 듯한 느낌. 대근이와 나의 일상은 늘 약속된 루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그날의 사건이 갑작스러웠다.
머릿속이 오락가락했다. 나에 대한 혐오와 후회가 넘쳐나는 와중에도,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이미 예정된 운명은 아닐까 생각했다. 혹은 안일한 나를 벌주기 위한 잔혹한 사건인가. 인간이란 존재는 사건이 닥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니 너의 안일함으로 시작된 문제를 상실로 겪어보라는 끔찍한 시험. 내가 방충망을 닫고 방묘창을 치우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내가 대근이에게 고통을 준 걸까. 하지만 우리 대근이는 행복했는데. 대근이는 늘 창밖 산책을 다녀오면 조잘조잘 내게 말을 걸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우리의 루틴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대근이와 나의 시간은 우리 둘만이 알 수있는 행복들로 가득했는데. 하지만 사고는 일어났고 내 생각과 관계없이 아이는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 후회한 들 의미 없었지만,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해가 지고 아이가 떨어졌던 그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죽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무릎을 꿇었다. 다시 한번 내 행복과 남은 명줄을 대근이에게 양보해달라 기도했다. 대근이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울다가 잠들었다가를 반복했다.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하고, 누군가가 나를 생매장 시키는 것처럼 죽을 것 같아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씻지 못해 온몸이 끈적거렸다. 조용한 집을 견딜 수 없어서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았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방송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들리는 모든 게 무의미했다. 그러다 다시 깜빡 잠이 들었고,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전화번호 02. 병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동시에 밖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
휴대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담당 외과의였고, 일단 나를 안심시켰다.
지금 당장 위급 상황이라 전화한 것은 아니다. 다만 계속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하고 있으나 아이가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나아져야 하는 데 나아지지 않는다. 거기다가 아이의 멘탈이 좋지 않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뇌 손상 때문에 아이의 몸 기능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덤덤한 척 전화를 끊었다.
마음의 준비. 마음의 준비라. 어쩌면 이미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사용하던 물품을 닦고 후회하고 울부짖으며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아이가 이겨낼 경우, 재활에 대한 것부터 뇌 손상 때문에 아이가 장애를 얻으면 어떻게 케어를 해야 할지, 내가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당장이라도 병원에 달려가 근처에 있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옷을 챙겨입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다 병원 고양이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나에게 대근이의 상태를 전했고 여전히 차도는 없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근이에게 내 목소릴 들려줄 수 있겠냐 물었다. 그녀는 가능하다 했고, 곧 휴대폰을 대근이의 귀에 가져다 대는 듯했다. “지금부터 말씀하시면 돼요”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크게 뭉친 밥을 삼키듯 나는 쏟아낸 울음을 다시 삼켰다. 대근이에게 말을 건넸다. “대근아” “대근아, 내 새끼” 내 목소리에 반응한 듯 대근이가 울었다. 몇 번을 더 울었다. 다급하게 아이패드를 꺼내 대근이의 목소리를 녹음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대근이와의 짧은 통화 후, 나는 전화를 끊었다. 다시 울었다.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으면서 울었다.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울었다. 아이가 다치게 된 게 내 잘못이라 울었다.
한 시간 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는 다시 한번 전화기를 대근이의 귀에 가져다주었다. 대근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내 새끼, 사랑하는 내 새끼.
누나가 정말 미안해. 아프게 해서 미안해.
대근아, 정말 고마워. 누나가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누난 대근이 없었으면 진작 죽었을지도 몰라.
대근아, 정말 사랑해.
힘내자, 내 새끼 힘내자. 우리 대근이 잘 한다, 힘 내자.
대근이가 울었다. 힘내자는 말에 정확하게 몇 번이나 울었다. 내 부름에 답했다. 난 모든 걸 녹음했다. 조금만 버텨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고 난 희망을 품었다. 대근이가 힘내겠다고 했으니 오늘을 잘 버텨내겠지. 사랑하는 내 새끼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벽 1시쯤. 아이가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아, 내가 갈 때까지 버텨달라는 게 아니었는데 너의 숨을 위해 버텨달라는 거였는데. 이런 식으로 버텨 달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