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네가 없는 작은 방

by 흐를일별진



6월 7일.


다급하게 병원에 도착해 대근이를 만났다. 대근이는 핫팩 여러 개를 몸에 올려둔 채 심폐 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숨쉬기가 힘든지 꺽꺽거렸다.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몸을 빠르게 돌던 혈액이 순식간에 멈추는 듯한, 대근이와 나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

몇 분의 담당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안을 알려주셨다. 그 방안 중 하나는 이만 아이를 보내 주는 것.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어서 힘들어하는 대근이만 쓰다듬는데 담당 외과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 대근이를 바라보다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다.


문을 열고 차가운 의자에 앉았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어두웠다.

대근이의 뇌 손상이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폐 쪽에는 문제가 없고 가슴 쪽 뼈도 골절이 없는데, 뇌 손상이 아이의 호흡을 방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내가 오기 전 두 번의 발작도 있었는데 그게 온전한 뇌 손상 증상이라고 했다. 거기에 떨어지면서 받은 자극이 피부 속에도 영향을 줘서 피부 아래 기포 같은 것이 들어 차 있는 상태라고 했다. 어디서 공기가 새는 건지 확인을 해 볼 수는 있는데 마취를 하고 수술하는 도중 잘못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은 하나의 결과를 향하고 있었다. 다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주저하고 있었을 뿐.


결국 내 선택지는 하나였다. 아이를 보내 주는 것. 내 손으로 아이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것. 길게 고민할 수도 없었다. 그 순간에도 대근이는 힘들어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대근이를 보내 주기로 했다.

내 결정은 모두에게 전해졌고 심폐 소생술은 서서히 중지됐다. 의사 선생님이 약물을 가지러 간 사이, 난 대근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 키스를 하고 손길 하나하나에 사랑을 담아 아이를 쓰다듬었다. 새벽 1시 15분.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어 마지막 인사를 하게 했다. 엄마는 울었고 난 울지 않았다. 대근이가 마지막으로 보는 내 모습이 슬퍼하는 모습이어선 안됐다.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전부였던 우리 대근이, 사랑한다.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아이의 심장이 조금씩 멈출 무렵 약물이 도착했다. 1시 20분. 그렇게 대근이는 잠들 듯이 편안하게, 완전히 내 곁을 떠났다.


담당 선생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병원 로비에 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얼마 뒤 대근이가 상자에 담긴 채 내 앞으로 왔다. 4.5kg의 우리 대근이는 상자에 모로 누워 있었다. 쓰다듬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차마 집으로 갈 수가 없어서, 병원 로비에서 장례식장을 알아봤다. 이곳저곳 전화를 돌리고 당장 당일 오전에 장례를 치를 수 있는지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몇 군데를 추려 정리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첫 비행기로 서울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대근이가 없는 집에 있는 게 두려워서, 혼자 있을 자신이 없어서 엄마를 불렀다. 그리고는 대근이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병원비를 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아. 지독한 현실. 모든 건 꿈이 아니었다.


택시에서 내려 주차장을 지났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7층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 높이에서 네가 떨어졌구나.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현관문을 열었다. 늘 마중을 나오던 너였는데, 지금은 나랑 같이 있구나. 근데 왜 울어주지 않는 건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지만 뭔가에 막힌 듯 나오지 않았다. 침을 삼킬 때 마다 돌덩이를 삼키는 것 같았다.


방 중앙에 상자를 놓아두고 옆에 앉았다. 대근이가 좋아하던 이불을 덮어주고 더위에 아이의 몸이 상할까 아이스팩도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이빨 밖으로 나온 혀도 잘 넣어주고. 만지고 또 만졌다. 대근이를 끌어안고 아이의 등에 입맞춤했다. 아이의 냄새를 마음껏 맡았다. 우리 대근이에게선 잘 말린 빨래 냄새가 났는데, 그 날은 병원 냄새가 났다. 병원 냄새를 지우기 위해 내 손길로 닦고 또 닦아내면서, 나는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쏟아냈다. 내가 얼마나 대근이를 사랑하는 지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살아생전 대근이는 그랬다. 침대 옆 소파에 놓아둔 방석이 대근이의 지정석이었는데, 내가 잘 때쯤엔 늘 그 자리에 누워 날 바라봤다. 손을 대근이의 배 쪽으로 뻗으면 아이는 슬그머니 한쪽 발을 들어 내가 배를 만지기 쉽게 몸을 움직여 주었다. 대근이가 노곤해질 때쯤 아이를 보고 말했다. 대근아 사랑해, 누나가 아주 많이 사랑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면 대근이는 내 애정 표현에 화답이라도 하듯 똑같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난 그런 대근이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행복에 빠져 있다가, 이내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고 대근인 내가 잠들고 나면 자리를 옮겨 혼자만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내가 기다려줄 차례였다. 대근이가 잠 들 때까지, 무지개다리를 편안히 건널 때까지. 내가 기다리고 배웅해줄 차례였다. 박스를 무릎 위에 올리고 계속해서 대근이를 만졌다. 날 그렇게 좋아해도 내 무릎 위엔 올라와 주지 않더니, 기껏 올라온 게 지금이라니. 한참을 사랑한다고 말하다가 고맙다고 했다. 대근이는 상처 하나 없었다. 깨끗했다. 정말 예쁜 모습이었다. 그리고 숨이 멎기 직전까지 날 기다렸고 날 바라봤다. 아이는 잘 버텨주었다. 이왕 버틸 거 좀 더 버텨주지 누나 걱정하지 말라고 빨리 떠나버린 건가. 자신을 병원에 두고 제대로 지내지 못할 날 걱정해서 이렇게 빨리 떠나버린 건가.

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가슴을 쳤다. 그러다 이런 시간이 있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아이의 사고와 마지막 순간이 모두 내 시야 안에 있었던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을 보낼 시간이 충분했으니까. 그래, 그건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불행 중 다행.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생각에 틈이 생기면 곧바로 후회와 자책이 몰려왔다. ‘그랬더라면’ ‘이랬더라면’ ‘내가 왜’ 온갖 종류의 죄책감이 칼로 찌르듯 몸을 후볐다. 대근이와의 이 귀한 마지막 시간을 후회와 자책으로 보낼 수 없었다. 애써 심호흡하며 생각을 컨트롤하려 노력했다. 이미 일어난 일에 자책은 의미가 없다.


유튜브에서 펫로스 증후군에 대한 영상을 보고 반려동물의 사후에 대한 영상을 찾아봤다. 그중 와닿는 게 있었다. 반려동물의 영혼은 너무나도 맑고 순수해서 그들에게 죽음이란 그저 소풍 가듯 놀러 가는 개념인데, 간혹 가족이 지나치게 슬퍼하면 아이들이 제대로 떠날 수 없다는 거였다. 스톤이나 장신구의 형태로 유골을 보관하는 것 또한 떠나간 동물들에게 좋은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예로 아이들은 사람의 곁을 떠돌며 평소처럼 놀아달라 만져달라 머무는데, 사람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으니 아이들이 결핍의 상태로 떠돌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안 그래도 대근이를 만지면서 진작 수염 몇 가닥 챙겨놓을 걸, 털 공이라도 만들어 놓을 걸 후회하던 찰나였는데 모든 게 내 이기심이구나 싶어 마음을 접었다.


조금씩 마음이 차분해졌다. 차분해진 것만 같았다. 여전히 속은 답답하고 심장은 뛰다 못해 멈춘 것 같고, 숨쉬기도 답답했지만 난 내일을 봐야만 했다.

정신을 차리고 잠시 대근이를 내려놓았다. 장례식장에 가져갈 대근이의 간식과 장난감, 즐겨 먹던 간식을 챙겼다. 대근이를 덮어두었던 담요도 곱게 접어 챙겼다. 잘 나온 아이의 사진 몇 장을 장례식장 관계자에게 보내고, 다시 대근이 옆에 앉았다. 사후 경직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예쁘기만 한 내 새끼를 한참 동안 눈으로 담고 감각으로 담았다. 여전히 부드러운 털의 감촉을 잊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기억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창밖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공항에 도착한 엄마를 픽업 후 곧바로 김포의 장례식장으로 이동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상자를 고이 안고 집을 나섰다.



지금은 어디쯤 있니

아직 이 작은 방 안에 있니

너는 참 착하고 다정한 아이였으니

누구보다 내 감정에 민감한 아이였으니

지금도 나를 걱정하고 있을까

나는 울지 않고 있어

널 완전히 보내는 그 날까지

나는 잘 참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