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든 게 운명일 지도
대근이 없이 살았던 때가 기억나지 않는다. 나름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보냈던 거 같은데, 되돌아보면 그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내가 처음 고양이를 키웠을 땐 대학생 무렵이었다. 당시 남자친구가 키우던 고양이를 (그가 군대에 간 2년 동안) 맡아 키웠던 게 첫 경험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신디. 사진가 신디 셔먼의 이름이기도 했다. 신디는 암컷 샴 고양이었는데 얼마나 애교가 많은지 늘 내 무릎과 배 위를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순하기도 엄청 순해서, 4시간 30분에 걸쳐 고속버스를 타고 당시 본가였던 포항에 갈 때도 큰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신디와 함께 보낸 2년은 꿈만 같았다. 고양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처음 알았고 내가 고양이에 대해 알고 있던 건 모두 편견이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디는 내 고양이가 아니었기에 나는 딱 그 정도의 마음만 줬다. 그래서 신디가 남자친구에게 돌아간 이후에도 아쉽진 않았다.
몇 년 뒤, 제주에서 한 달을 살다 온 나는 서울에서 지내자마자 우울증이 앓았다. 서울이 싫었다. 서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싫었고 서울에서 해야만 하는 내 직업도 싫었다. 그 무렵 우연히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라는 카페를 알았고 습관처럼 카페의 글을 읽던 와중에 대근이를 만났다. 자꾸 대근이가 생각나 미칠 것 같았다. 입양을 신청해볼까 그냥 가만히 있을까 며칠을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책임감, 떠나보낼 때의 상실감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유기묘 입양이라는 건 어차피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입양을 신청해도 심사가 필요했고 여러 가지 검증을 해야 했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입양 신청서를 냈다. 모든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얼마 뒤, 대근이는 나의 소중한 가족이 됐다.
대근이가 집에 오고 제일 크게 달라진 건 내 하루가 바빠졌다는 거였다. 창틀에 자주 올라가는 아이를 위해 창틀 구석구석을 닦았다. 혹여나 대근이에게 피부병이 생길까 고양이가 올라갈 수 있는 모든 곳의 먼지를 닦는 건 기본이었다. 주기적으로 악몽을 꾸던 내가 악몽을 꾸지 않게 되고, 간혹 불편한 꿈을 꾸더라도 대근이의 이름을 부르는 걸로 떨쳐낼 수 있었다. 자그마한 존재감이 내 방을 가득 채우고, 그 생명이 내 전부가 되기까지 불과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퇴근 후 대근이를 붙잡고 조잘조잘 있었던 일을 말하고, 일을 쉴 때도 대근이를 챙기느라 우울해지지 않았다. 물론 초반에는 한때 데리고 있었던 신디가 생각나 아이를 괴롭히기도 했다. 애교가 많았던 신디와 달리 대근이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아이였다. 혼자 있고 싶은 아이를 강제로 끌어안고, 마치 내가 반려동물이 된 양 대근이에게 징징거렸다. 대근이는 내가 얼마나 귀찮았을까.
우리 둘의 시간이 제법 편안해진 건, 대근이가 오고 1년 뒤 화곡동의 원룸으로 이사를 하고 난 후였다. 좁은 원룸 안에서 우리 둘은 좋든 싫든 근처에 있었고 강제적으로 좁혀진 거리는, 나에 대한 대근이의 거리도 좁혀놓은 듯했다.
그렇게 대근이가 내가 되고 내가 대근이가 될 무렵, 아이와 나는 본가에 자주 들렀다. 일 년에 한 번씩 3개월 이상 집에 머무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대근이가 운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아빠가 부드럽게 변했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가족 전체를 바꿔놓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대근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이 웃었다. 아빠는 대근이를 위해 키에 맞는 식기를 직접 만들었고 후에는 캣타워까지 제작했다. 출근 직전, 퇴근 후 빼먹지 않고 아빠가 하는 일은 대근이에게 간식을 주는 일이었다. 대근이가 낮잠을 자고 있으면 아빠는 아이처럼 엎드려 누워 대근이의 미간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엄마는 대근이에게 말을 걸 때마다 어린아이 대하듯 애교가 섞였고, 내가 대근이에게 장난을 치면 늘 대근이의 편에 서서 나를 혼냈다. 나는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대근이를 꼭 끌어안고 바닷가 산책을 가기도 했고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대근이가 창밖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베란다엔 전용 의자도 마련해 두었다. 차를 무서워하는 대근이를 위해 차 안에서의 좋은 기억을 심어주려 노력하기도 했다. 간혹 대근이가 장롱 위로 점프라도 하는 날이면 엄마 아빠는 최고의 재롱을 보는 것처럼 “대단하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난 엄마 아빠와 대근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대근이를 통해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덕인지 몇년 뒤 둘째 칠석이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석이는 친구네 회사에서 지내던 길냥이의 새끼였다. ‘칸’이라는 이름의 막내 고양이는 꼬리 끝이 꺾여 있어 무리에서 겉돌았다. 우리는 그 아이를 데려와, 음력 칠월 칠석 엄마의 생일에 왔다고 하여 ‘칠석’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었다.
석이는 내가 처음에 키웠던 신디와도 지금 함께하고 있는 대근이와도 달랐다. 좋은 의미로 얼마나 뻔뻔한지 오자마자 배를 보이고 드러누웠다. 다행히 대근이도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기에 합사는 수월하게 이루어졌고 석이와 대근이는 엎치락뒤치락 친구처럼 지냈다. 물론 석이의 체력이 감당이 안 되니 종종 대근이가 피곤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대근이는 그때마다 석이를 피해 옷장 위로 올라갔고, 나이가 어려 위로 오르지 못하는 석이는 밑에서 대근이를 바라보며 옹알거리다가 이내 사람의 곁에 누웠다. 또 다른 행복이었다.
온 가족이 집에 오자마자 고양이들을 찾았다. 3교대로 일하던 아빠의 출퇴근 시간을 지킨 건 대근이와 석이었고, 우리의 잠자리를 순찰하듯 돌아다니던 존재도 대근이와 석이었다. 엄마는 집이 포근해진 거 같아서 좋다고 했고 아빠는 크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석이 키에 맞는 식탁을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 애정을 드러냈다.
내가 대근이를 데리고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우리 가족은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각자의 아이를 자랑하기 바빴다. 엄마와 아빠는 석이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웠고, 석이는 두 사람의 사이를 돈독하게 해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근이는 내가 조금이라도 슬퍼하지 않도록, 힘든 사회생활 속에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나의 기둥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하나 더. 석이와 대근이 덕분에 우리가 바뀐 건 또 있었다.
바로 길고양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포항에 있던 본가가 부산으로 이사를 한 후, 엄마가 부쩍 길고양이 이야기를 많이 하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지내고 있는) 부산 초량동에는 길고양이가 많다. 그중 몇몇은 우리 집 1층 마루에 자리를 잡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마음이 쓰이고 간식 하나라도 더 챙기게 됐다. 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이곳 동네 사람들은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명확하게 나뉘는데, 간혹 어르신 캣맘 두 분이 챙겨준 밥그릇을 집어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캣맘 두 분이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온 동네의 고양이 밥을 챙겨주신다) 물론 그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엔 캣맘 두 분이 차 밑, 길 중앙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밥그릇을 놓는 통에 도로가 지져분해졌던 게 그 이유였다. 이에 매번 사람들과의 싸움이 일어나 동네가 시끄러웠다고 했다. 양쪽의 마음을 모두 이해는 하지만,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며 동네 장사를 하던 엄마는 대놓고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대신 양쪽 어디든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할 시엔 앞장서서 해야 할 말을 했다. 캣맘 두 분에겐 두 분의 행동이 이 동네의 고양이를 대하는 주민의 반응을 결정한다며 모든 걸 깨끗하게 정리할 것을 요구했고 욕을 하고 삿대질하는 주민들에겐 이 동네에 쥐가 없는 이유가 뭐겠냐며 공생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물론 고양이들의 영역 싸움 때문에 동네가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사실 그것도 한 철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제법 고양이와의 공생관계가 자리를 잡은 듯했다. 동네 분들의 허락을 얻은 듯 지정석에 밥과 물을 놓아두고 아무 데나 간식을 두지도 않는다. 캣맘들이 와도 동네 사람들은 화내지 않고 두 분은 조용히 할 일을 하고 떠나신다. (물론 이 평화가 언제까지 갈 진 모르겠지만) 사실 그 난리가 났을 때 나름 중립국이었던 엄마의 중재가 제법 큰 역할을 했는데, 나는 엄마의 그런 행동이 놀라웠다. 대근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 노발대발하던 엄마는 어디에도 없고 고양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만 있었으니까.
대근이를 떠나보내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요즘, 나와 엄마의 아침 일과는 집 뒤에 종종 보이는 새끼 고양이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걸로 시작된다. 어젯밤엔 잘 잤는지, 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지낼 곳은 찾았는지. 행여나 고양이가 보이지 않으면 엄마는 몇 번이고 그 아이들을 화두에 올리며 걱정하곤 했다. 안 그래도 동물의 시간은 사람보다 빠른데 길고양이의 시간은 집 고양이의 시간보다도 더 빨랐다. 그래서 마음이 쓰였다. 대근이를 통해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길 위의 생명을 위해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말로는 길고양이를 챙겨주지 말라며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아빠도, 마루 밑에서 지내는 고양이가 놀랄까 봐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엄마는 고양이를 위해 나서고 올바른 공생을 위해 해야 할 말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길고양이들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아이들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은 일절 하지 않는다. 물론 얼마 전에 한 아이가 아파 보인다며 부랴부랴 집으로 올라와 나에게 보양식 제조를 요구하긴 했다.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절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름 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이것저것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 이젠 고양이가 없는 삶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신디, 대근이.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석이가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인 것만 같다.
그래, 이별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만남도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