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고양이를 기리며
한때는 러시안 블루를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묘연이라는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나는 턱시도 고양이인 대근이를 반려묘로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은 턱시도 고양이를 제일 좋아한다. 내가 팔불출이어서가 아니라 대근이는 정말 예뻤다. 전체적으로 턱시도를 입고 있었지만 등 부분엔 옅은 태비가 있었고 얼굴의 흰색 대칭은 완벽했다. 심지어 하얀 양말도 야무지게 신었다. 대근이가 사람이었다면 장동건, 김우빈급의 선이 굵은 미남이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진짜 심각하게 잘생겼었다.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근이는 좋고 싫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해도 입질 한번 한 적 없었다. 알이 큰 알약을 먹여도 화 한 번 안 내고 꿀꺽 삼켜주었다. 간식을 주더라도 내 손을 깨물까 봐 조심스럽게 간식만 가져가 먹었다. 책상 위, 테이블 위, 식탁 위, 사람이 올려놓은 그 어떤 것도 건들지 않았다. 요리조리 피해 다닐지언정 절대 물건을 바닥으로 떨어뜨리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선비처럼 점잖은 거였지만, 다르게 말하면 난 그런 대근이가 안쓰러웠다. 사고도 치고 나이답게 우다다도 하고 좀 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했는데, 대근이의 그러한 성향이 나 때문은 아닐까 종종 마음이 쓰였다.
비린내가 나는 간식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누나인 나도 비린 걸 질색하는데 대근이와 내가 닮아가는 건지 유독 깔끔한 간식을 좋아했다. 주로 쥐포 형태의 건조 간식을 선호했고 캔의 경우는 육수가 별로 없는 가다랑어 향이 나는 걸 좋아했다. 깔끔한 불 향이 나는 생선 간식. 장난감은 깃털 형태의 스틱을 좋아했지만, 대근이가 진짜 신나 보일 땐 내가 몸으로 놀아줄 때였다. 좁은 집 안에서 내가 대근이를 툭 치고 도망가면 대근이가 쫓아오는 방식의 놀이였다. 요리조리 피하다가 한 번씩 고의로 잡혀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내가 아프지 않게 살짝 물거나 솜방망이로 종아리를 치곤 했다. 그러다 내가 먼저 지쳐버리면 난 대근이를 눕혀 그 배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때는 대근이와 내가 서열 싸움을 한답시고 난리였던 적도 있었다. 부부 싸움하듯 묘한 냉전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도 나는 고양이에 빙의해 대근이와 투덕거렸다. 대근이는 그런 나를 어떻게 봤을까.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악 질을 하기도 하고 골골거리기도 하고 네 발로 뛰기도 했으니까.
대근이와 나의 관계는 서서히 무르익었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애정을 표현하면서,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날 바라보며 눈 키스를 하는 등 묘하게 애교가 늘기 시작했다. 대근이가 잠투정하는 아이라는 걸 알고 난 후에는 아이가 잘 때쯤엔 늘 함께 누웠다. 말하지 않아도 대근이가 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표정만 봐도 뭔가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대근이가 떠나기 몇 달 전부터는, 내가 뭘 하든 곁에 가까이 머물렀다. 상을 펴고 바닥에 앉아 글을 쓸 때면 슬그머니 내 손이 닿는 자리에 몸을 말고 잠을 청했다. 한 번은 새하얀 라탄 바구니를 사서 옆에 두었더니 그 안에 자리를 잡았다. 한 손은 대근이를 만지고 한 손으로는 밥을 먹거나 힘겹게 타자를 두들겨 가며 글을 썼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으로 평온한 시간이었다.
해 질 무렵, 붉은 태양 볕이 집 안을 가득 채우면 대근이는 창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런 대근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새끼 진짜 예쁘다”를 연발했다. 휴대폰 앨범의 8할은 대근이의 사진과 동영상일 정도로 대근이는 내 일상, 내 전부가 되고 있었다.
대근이를 잃고 2주, 글을 쓴 지도 2주가 넘었다.
오늘은 7월 6일. 내일인 7일은 대근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이다. 나는 갑작스럽게 대근이를 잃었고 그와 동시에 내 주변 모든 게 변화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지금은 괜찮다고 말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다만 첫 2주 동안 충분히 울었고 글을 쓰는 2주 동안 상실을 받아들였다. 며칠 전부터는 해당 매거진 글의 마지막 쯤에 아이의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대근이를 찍은 모든 사진을 다시 보고 있다. 2015년의 6월. 대근이와의 첫 만남부터 대근이를 보내던 그날까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대근이가 이동장에서 나와 우리 집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 대근이가 날 보며 잠투정하던 순간. 수면 잠옷을 입은 내 무릎 위로 처음 올라왔던 때. 나에게 배를 내어주던 대근이의 포근함. 온기, 향기, 부드러운 털의 감촉. 누가 봐도 고의로 나를 밟고 지나갈 때의 그 묵직함.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던 울음소리. '착착'하고 들리는 대근이의 발소리. 퇴근 후 집에 들어서면 "왜 이제 와"라고 말하듯 긴-울음으로 현관에 나오던 너. 간혹 아이가 보이지 않아 이름을 부르면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듯 짧고 큰 울음소리를 내던 대근이. 그 모든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서글프게도 앞으로 그 추억이 현실이 될 일은 없지만, 그 말은 기억의 왜곡 없이 대근이와 내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현실이 될 수 없기에 오히려 영원할 수 있는 가슴아픈 이별.
대근이는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고 동반자였다. 대근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대근이가 있었기 때문에 평생을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얻었다.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사랑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의지도 얻었다. 대근이와 함께한 추억의 끝은 상실이지만 이별이 슬펐던 만큼 우리의 시간이 찬란했다는 걸,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거다.
내가 슬퍼하지 않는 건 대근이가 바라는 일이다. 그러니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건 대근이와의 시간을 추억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 중 하나다. 남아있는 자의 의무이기도 하고. 나는 대근이외의 추억을 추진력 삼아 앞으로 나아갈 거다. 네가 없어도 나는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