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추억하며 (2)
2016년. 대근이와 함께한 첫 번째 겨울.
바깥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내 마음은 따뜻했다. 집에 오면 기다리는 존재가 있었고 사람보다 높은 체온의 대근이를 만지고 있으면 금세 몸이 따뜻해졌으니까. 대근이는 애착 방석에 누워, 내가 자신의 배를 만져주는 걸 좋아했다. 골골골 소리를 크게 내는 법은 없었지만 들릴 듯 말 듯 한 골골 송과 함께 꾹꾹이를 했다. 어쩜 저렇게 야무지게 꾹꾹이를 하는 건지, 나는 대근이를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털을 밀고 난 후 대근이가 추울까 봐 빨간 옷을 사 입혔다. 옷을 입는 것도 불편해할 법 한데 대근이는 한 번도 싫은 티를 낸 적 없었다. 정말, 정말로 우리 대근이는 신사 같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봄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듯 나와 대근이도 동생과 함께 살던 투룸을 벗어나 화곡동의 원룸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청파동 집 창가의 대근이를 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는 대근이와 함께 오붓한 생활을 할 거라는 생각에 기대가 됐다. 집이 좁아지면 대근이가 조금 더 나에게 치근덕(?) 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고.
다행히, 대근이는 이사한 화곡동 집에서도 찰떡같이 적응을 했다. 첫날부터 침대에 배를 보이고 눕거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바닥에 철퍼덕 엎어지기도 했다. 어디서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러시아 풍습이랬나) 새집에 들어가면 먼저 고양이를 풀어놓아 보라고. 그때 고양이가 몸을 말고 쉬거나 눕는 자리가 침대를 놓아야 하는 자리라고 하더라. 풍수지리적으로 동물에 관한 이야기야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나는 대근이가 좋아하는 곳이 곧 나의 자리라고 믿기로 했다. 이러나저러나 대근이가 좋으면 됐다, 나는.
대근이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으면 온기가 전해졌다. 몰랑 몰랑한 뱃살과 보드랍게 살에 닿는 털의 감촉이, 마치 천국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이런 걸까 생각하게 했다. 주로 대근이의 미모가 감당이 안돼서 미친 듯이 사진을 찍곤 했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근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고양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대근이가 원하는 대로, 편안하게 내버려 둬야 하는데 그 마성의 귀여움 때문에... 나는 수시로 대근이에게 장난을 쳤다. (상당히 귀찮아 하지만 받아주긴 한다)
대근이는 살이 찌지 않았다. 예민한 구석이 있는 건지, 활동량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무리 좋은 걸 먹이고 사료를 듬뿍 줘도 딱 정량만 먹고 멈췄다. 나중에야 대근이의 입이 짧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는 모든 게 내 탓인가 싶어 좋다고 하는 건 모두 사서 먹였다.
물론 그래도, 대근이는 늘 적정 몸무게를 유지했다.
간혹 대근이와 격하게 놀아주다가, 발톱에 긁히거나 깨물리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대근이가 힘 조절을 했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 대근이는 본인이 더 놀라서 머쓱해하곤 했다.
집이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어수선하던 집 내부는 대근이의 물품으로 하나 둘 차기 시작했고 캣타워도 먼지가 덜 날리는 원목으로 바꿨다. 물건을 어지르지 않는 대근이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진열할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았다. 물론 나중에는 어지럽게 놓여있던 것들을 싹 치우고 죄다 수직 공간으로 만들긴 했다. 다만 저 때는 저 집에 적응을 하던 기간이라, 이것저것 로망을 실현하느라 바빴을 뿐. 그래도 수직 공간 위의 대근이는 미친 듯이 귀여워서 사진을 안 찍고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달 정도 대근이와 떨어져 있었던 때가 있었다.
서른 살 맞이 대학 친구들과 제주 한 달 살이를 갔던 때인데, 방문 탁묘를 맡겼었다. 탁묘를 해주신 분은 대근이를 입양할 때 만났던 언니의 지인이었다. 그분은 매일 우리 집에 들러 물과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셨고 나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주셨다. 그렇게 한 달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대근이는 자신의 영역이, 공간이 아닌 집사인 '나'인 것 같다고.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대근이의 영역이 공간이 아닌 '나'라는 사실을 뼈 저리게 알았다.
그 이후 대근이는 내 외출에 민감해졌다. 화장실 문을 닫으면 불안해했기에 늘 문을 열고 살았고, 머리를 감고 나갈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도 정확히 알았다. 가끔 머리를 감지 않고 분리수거라도 하러 나가면 어김없이 닫힌 문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마음이 쓰이던지.
대근이가 나와 있을 때 가장 편안해한다는 건 수많은 사진을 통해서도 증명이 되는 것 같다. 한동안 대근이를 떠올리는 게 힘들었는데, 이렇게 사진을 고르면서 난 많은 걸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2016년. 2살 대근이와 사계절을 보내면서 느낀 건, 난 참 행복하다는 사실이었다. 행복이란 건 가까이에 있다는데 바깥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 행복은 작은 방 안에 있었다. 대근이의 영역이 공간이 아닌 나였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내 영역은 집이 아니라 대근이었다.
자그마한 몸으로 끝없는 사랑을 주던 나의 고양이, 대근. 난 네가 날 보던 그 표정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