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추억하며 (3)
2017년. 역사 예능을 하면서 바쁘게 보냈다. 처음으로 1시간 분량의 예능 대본도 써보면서 많은 걸 배우기도 했다. 물론 배울 점이 많았던 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나는 선배 언니의 묘한 괴롭힘에 시달리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를 잃었다. 일은 즐거웠으나 마음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도 대근이는 든든히 나를 지켰다. 밖에서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집에만 오면 모든 게 눈 녹 듯이 사라져 버렸다.
가끔씩 대근이를 보고 있으면 천사가 동물의 모습이라면 이런 모습일까, 생각이 들었다. 보석 같은 눈, 초록과 노랑 사이 반짝이는 눈, 핑크색 코. 가끔 코 안에 코딱지가 있어도 귀여운 존재.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시옷 입. 코와 입을 연결하는 핑크색 실선.
빛에 반사되면 반짝이는 대근이의 털. 잘 빠진 턱시도와 양말, 쫑긋 서 있는 귀. 오밀조밀 귀여운 솜방망이와 젤리. 한 손에 쏙 들어오던 너의 엉덩이. 손바닥을 가져다 대면 살짝 턱을 괴던 너의 행동. 기분이 좋으면 지그시 감던 눈. 대근이의 모든 게 선물 같고 기적 같았다. 대근이가 나에게 온 일 자체가 묘연이라 생각해서 그랬던 건지, 난 대근이를 볼 때마다 운명을 실감했다.
운명처럼 만난 대근이와 나는 친구처럼 투닥거리다가 연인처럼 싸웠고, 때로는 부모 자식처럼 화해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과의 관계가 아니라 마음으로 통하는 내 사랑과의 관계. 그게, 나와 대근이의 사이였다.
대근이와 함께 지내면서 이것저것 참 많이도 샀다. 혼자 있을 때 가구를 고르는 기준과 대근이가 있을 때 가구를 고르는 기준이 확연히 달라지고, 모든 게 대근이 위주로 흘러갈 때. 문득 '같이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 깨닫기도 했다. 대근이가 올라가도 튼튼한 가구, 대근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대근이가 좋아하는 캣타워, 대근이가 좋아하는 담요. 하나하나 대근이를 생각하고 배치했다.
대근이가 좋아하는 게 늘어날 수록 내 성취감과 행복도도 그만큼 높아졌으니, 역시 대근이는 존재 자체가 내 행복이었다.
물론 우리가 함께 산다는 사실은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았다. 옷에도 털, 가방에도 털 가끔 지갑에도 털! 혹시라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위해 모든 털을 열심히 떼고 살았지만, 대근이 털은 돌돌이를 피하듯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왜냐, 대근이는 빨래 위에 눕는 걸 좋아했기 때문! 특히 건조대게 널기 위해 바닥에 내려놓은 상태의 빨래를 가장 좋아했다. 축축하고 차가운데 왜 그러는 지 알 순 없었지만, 그래도 대근이가 좋아하면... 그 모습이 귀여워서 미친듯이 사진을 찍었다.
대근이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포항 본가에도 전해졌다.
2017년 당시, 엄마의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서야 포항 본가에 내려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다행히 프로그램이 상반기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이 때문에, 나는 걸리는 것 없이 본가로 내려갈 수 있었다. 대근이는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엄마아빠에게도 행복을 줬다. 집 곳곳을 돌아다니며 존재감을 내뿜는 대근이 덕에 우리 가족은 참 많이 웃었다.
대근이에게 영역이란 내가 있는 곳이랬던가. 원래 살던 곳과 완전히 달라진 환경에도 대근이는 찰떡같이 적응했다. 창틀, 바닥, 장롱 위, 서랍 위... 온갖 곳을 탐험하는 통에 엄마와 나는 더 부지런해졌다. 사실 손에 닿지 않는 곳은 자주 청소를 못 하는 게 현실인데, 대근이가 오고나서 매일 매일 손 닿지 않는 곳까지 물걸레질을 했다. 고양이를 키우지 말라던 엄마가 누구보다 대근이의 건강을 생각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의 새로운 모습을 대근이로 인해서 알 수 있었다.
간혹 귀여운 것들이 보이면 어김없이 구매해 대근이에게 적용(?)해 보았다. 대근이가 모든 걸 허용해 주는 시간은 1분 남짓. 그 찰나에 호다닥 사진을 찍고 엄마와 나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와 대근이의 거리만큼 엄마와 대근이의 거리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근이는 어디든 있었다. 하지만 자기 직전엔 늘 내가 있는 곳으로 왔고 지정 방석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그 외의 시간엔 본인이 있고 싶은 곳에 있거나 온수매트 위에 있었다. 날이 추워질 수록 대근이는 점점 더 따뜻한 곳을 찾았고, 난 이불 속의 대근이에게 또 한 번 반했다.
나의 가족이었다가 우리의 가족이 된 대근이. 그 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이 찾아올 때쯤, 나는 새 프로그램에서 일 하기 위해서 서울로 돌아왔다.
엄마의 마음은 나와 대근이로 인해 많이 좋아진 듯 했지만, 그것과 고양이의 존재감은 별개라서 한동안은 조금 더 힘들어 했다. "우리 대근이" "우리 잘생긴 대근이"를 달고 살았던 엄마였기에, 종종 거리며 집을 돌아다니던 존재가 사라진 게 영 외롭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나는 슬쩍 둘째를 권했다. 고양이의 매력이 이런 거라며, 엄마아빠도 유기묘를 입양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때 엄마는 그랬다. 대근이로 만족한다고. 가끔 대근이가 오면 같이 있는 걸로 좋다고. 눈에 띄게 다가오는 '난' 자리가 엄마는 두려웠던 것 같다. 어떠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그 존재와의 이별에 대비해야 한다는 소리와도 같으니까.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엄마와 고양이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