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추억하며 (4)
2018년의 겨울. 대근이는 포항에서의 외동묘 생활을 만끽하며 사랑을 받았다. 온 가족의 곁을 골고루 맴돌다가도 늘 잘 때가 되면 내 곁으로 왔다. 별거 아닐 수 있는 일상이지만,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알게 모르게 대근이가 사람들에게 친절하면 조금 질투가 나기도 했었는데, 마치 내 질투심을 알고 있다는 듯 대근이는 때가 되면 알아서 움직였다. 정말, 매력적이다.
대근이는 포항 집 곳곳을 누볐다.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한 곳은 앞 베란다에 놓여있는 세탁기 위. 이른 아침 햇살이 세탁기 위를 가득 채우면 대근이는 어김없이 그 위에 엎드렸다. 엄마는 그런 대근이를 몇 번 보더니 애 배가 차다며 부드러운 담요를 깔아두었다. 난 사랑받는 대근이가 좋았다.
엄마 아빠가 외출하고 나면,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 대근이가 있었기에 외로울 틈이 없었다. 간식을 받아먹는 모습이나 '굳이' 빨래 위에 누워있는 모습. 가끔 혼자 놀다가 우스꽝스러운 자세라도 취하면 어김없이 웃었다. 간혹 엄마아빠는 대근이에게 장난을 치곤 아이처럼 웃었다. 그럼 대근이는 갑자기 웃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자기 갈 길을 갔다. 모든 게 편안하고 행복했다.
영원할 것 같은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왔다.
나는 또 다시 프로그램 하나를 맡게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전국 각지로 여행을 다니는 프로그램이라 2주에 한 번 무조건 1박 2일로 집을 비웠다. 바쁘기도 바빴지만, 선배 언니가 후배 작가들을 경쟁에 내모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두 팀이 한 프로그램을 제작했기에 시청률이나 출연자들의 반응에 따라 미묘하게 경쟁 구도가 형성됐는데, 그걸 부추긴 게 선배들) 그때마다 나는 대근이에게 고마움과 큰 애정을 느꼈다. 매 순간이 대근이에 대한 감사함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대근이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손으로 느껴지는 대근이의 무게. 온 몸이 기억하는 대근이의 향기, 털의 촉감. 말랑한 젤리.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잊을 수 없었다. 한때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 애를 먹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고양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 넘쳐나면서, 대근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분명 달라졌다. 하지만 머리로 지식을 쌓고 이해하는 것과 실제 아이와의 관계에 적용하는 데에서 차이가 있었다는 게, 지금도 슬플 따름이다. 대근이를 잃게된 사건은 고양이의 습성을 무시한, 가장 원초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거니까. 사람의 마음으로 동물을 이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동물의 표정도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이 들어가면 안쓰러워지고 불쌍해지는데, 그 감정에서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은 거다.
그나마 내가 후회하지 않는 건 매일 대근이의 눈을 보고 사랑한다고 말해줬다는 사실이다. 그 마음이 대근이에게 전해졌기를 바라며, 사진을 보며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대근이에게 사랑을 말하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대근이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대근이는 행복했을까. 나는 대근이에게 어떤 누나였을까. 대근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곁으로 갔다면 지금쯤 살아 있을까. 누군가의 집 곳곳을 누비며 애용애용- 할 말을 쏟아내며 잘 지내고 있을까. 나에게 대근이는 전부였는데, 대근이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대근이와의 동거가 계속될 무렵.
괜찮아진 줄 알았던 엄마의 마음이 다시 묘한 기류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엄마가 나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울었다. 나는 불안했고 초조했다. 다행히 레귤러로 쭉 갈 것 같던 프로그램이 채널 내부 사정으로 끝났다. 나는 후반 작업을 끝내자마자 짐을 싸서 본가로 내려갔다.
방송 작가의 업무는 작가 당사자의 의견에 따라 프로그램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로 휴직 상태가 결정되기 때문에 당분간 다시 올라가야할 걱정은 없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내 일보다는 가족이 중요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대근이가 더 넓은 집에서 더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게 좋기도 했다. 이러나 저러나 내 모든 결정에는 대근이가 얽혀 있었다.
그런 의미로 2018년 하반기는 우리 가족이 단단해지는 시기였다. 대근이가 엄마아빠의 고양이로 완전히 자리잡고 사랑받는 시기였으며, 우리 가족의 여정에 새로운 생명이 입양된 시기이기도 했다.
본가에 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엄마에게 둘째 입양을 권했다. 대근이는 내 새끼고, 내가 책임질 존재이지만 엄마도 엄마가 책임질 수 있는 존재를 곁에 두는 게 어떻겠냐 물었다. 마침 친구의 회사에 드나들던 코숏 어미가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엄마는 한참을 고민했다. 왜 고민하는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고민은 나도 두려웠던 거니까. 나는 말했다. 이별의 슬픔은 당연한 거고, 최소한 인간으로서 우리보다 수명이 짧은 존재의 생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찾아온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몇 번 대화를 하다보니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둘째를 들일 생각이었다는 걸. 작년, 대근이와의 동거 이후 엄마의 무언가가 바뀐 것 같았다. 내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처음엔 그냥 얼굴만 보자던 엄마였지만 막상 친구네 새끼 고양이들을 보고 난 후에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내심 대근이가 둘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국 내 새끼는 잘 해낼 거라고 생각했다. 워낙 순하고 착한 아이였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꼬리 끝에 장애를 갖고 태어나 무리에서 겉도는 아이를 데려왔다. 고양이의 엄마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시키고 대근이의 냄새가 가득 찬 이동장에 새끼를 넣었다. 옛날 이름은 칸, 입양 후의 이름은 '칠석' 칠석이는 엄마의 생일인 2018년 음력 칠월 칠일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건 행복이 두 배가 된다는 말과 같았다. 한 마리로도 귀여움이 넘쳐나는데, 숨만 쉬어도 귀여운 존재가 무려 둘이라니! 심지어 둘이 투닥 거리는 걸 보고 있으면, 진짜...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진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행복했다. 이 게시물 하나에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들어가는데, 그만큼 당시를 떠올리면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동반사적으로 나오게 된다.
석이는 에너지 넘쳤고 대근이는 적당히 받아줬다. TV에서 어린 고양이와 성묘는 체력 차이가 나서, 성묘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기에 대근이의 스트레스 관리에도 힘썼다. 재밌는 건, 내가 석이 몰래 대근이를 챙겨주면 어김없이 엄마가 나서서 "우리 애는 왜 간식 안 주노!"라며 석이 편을 들었다는 거다. (언젠 고양이 키우지 말라더니... 훗)
이렇게 사랑스러운 두 고양이는 아무런 사건없이 행복하게 지냈습니다!면 좋은데, 대근이 털을 밀었다. 물론 털 민 대근이도 여전히 예뻤고, 석이도 별 다른 거부감이 없어보였다. 재밌는 건 그 사이에 석이가 큰 건지 대근이의 털옷이 벗겨져서 슬림한 몸이 드러난 건지 둘 체격 차이가 많이 줄었다는 것!
석이의 식지 않는 열정은 분명 어린 나이와 중성화 하지 않은 수컷이라는 게 한 몫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기에 맞춰 석이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의사 선생님은 중성화를 하고 나면 아이가 의욕이 없고 좀 얌전해 질거라고 했는데... 음... 석이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땅콩을 뗀 숫냥의 열정은 여전했고, 우리 대근이도 여전히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냥의 투닥거림은 귀여움, 그 자체였다.
사실 처음엔 싸우는 게 아닐까, 대근이가 군기를 잡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지켜보니 둘 다 꼬리 팡을 하지도 않고, 엎치락 뒤치락 술레잡기를 하듯 번갈아 노는 걸로 봐서 확실히 대근이가 놀아주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엄마는 헐벗은 대근이를 위해 옷을 만들기도 했다. 대근인 옷, 석이는 스카프. 옷을 만드는 내내 두 아이는 엄마의 곁을 지키며 이것저것 관심을 보였다. 일부러 촌스러운 원단을 사용해 옷을 만들었는데, 완성된 옷을 보고 나서 한 번 웃었고 대근이에게 입히고 나서는 박장대소 했다.
아빠가 애들을 위해 식탁을 만들더니, 결국 캣타워까지 손수 만들었다. 아빠야 말로 고양이에 대한 아니, 동물에 대한 애정 자체를 보이지 않았던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니! 솔직히 반쯤은 농담으로 캣타워를 만들어 달라고 한 말이었지만, 실물을 보고는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사람을 향한 동물의 애정과 신뢰는 정말 차가운 얼음도 녹일 수 있나 보다.
2018년의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 그래서 우리 집도 대형 난방 텐트를 구매해 거실에 설치해 놓았다. 사람은 텐트 안이 따뜻해서 좋았고 두 냥이들에겐 놀 장소가 생겨서 좋았다. 캣타워 위에서 텐트 천장으로 뛰는가 하면 텐트 비닐을 긁어대는 통에 구멍이 숭숭 났다. 그래도 늘 따신 곳은 기막히게 찾는 고양이 답게, 밤에는 텐트 안에 비집고 들어와 사람 곁에서 잠을 청했다. 아늑한 장소에서의 대근이와 칠석이는 귀여움이 몇 배는 상승했고, 나는 그런 두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아, 이 행복이 오래 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