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다섯 살의 대근, 어엿한 형아

너를 추억하며 (5)

by 흐를일별진



2019년. 내 나이 서른셋. 대근이는 다섯 살, 칠석이는 한 살.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도 흘러갔다. 석이의 덩치가 대근이와 비슷해지고 대근이는 석이를 대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듯했다. 여전히 둘 사이는 가깝고도 멀었지만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하는 포항 본가에서의 생활은 정말 행복했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그만큼 햇살이 따뜻해질 무렵, 두 고양이는 조금 더 붙어 다녔다. 집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 따뜻한 이불 위, 물론 높은 곳은 기본.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석이를 피해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던 대근이의 곁에 석이가 함께 했다는 거다. 석이는 대근이가 하는 건 뭐든 따라 했다. 대근이가 가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 치고는 높은 곳에 호기심을 갖지 않던 석이었는데 대근이가 올라가는 길은 여지없이 따라다녔다. 석이는 귀여운 동생 같았고 대근이는 제법 형아 티가 났다.












꽁냥꽁냥








역시 혼자 있을 때가 제일 편함




물론 석이가 없을 때면 (다른 방에 있거나 엄마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을 때) 난 대근이를 온전히 예뻐했다. 혹시라도 석이를 귀여워하는 나를 보고 대근이가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간식도 몰래 우쭈쭈도 몰래, 마치 (잘 알지는 못하지만) 둘째가 태어난 후 첫째의 마음을 신경 쓰듯 대근이를 챙겼다. 사실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가끔 석이와 놀고 있는 나를 대근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내심 마음이 쓰였다. 대근이는 알까. 석이가 아무리 애교가 많아도 난 늘 대근이가 최고였다. 이 세상 어디에도 대근이 만큼 잘 생기고 다정한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었고, 그 확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엄마랑 동물 병원도 가고!
햇살 좋은 날 엎드려 쉬고!






캣닢 쿠션 무아지경 상태






냥권을 보장해드립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습긴 한데, 대근이가 혼자 쉬고 싶은 티를 낸다 싶으면 냉큼 석이를 큰 방에 격리했다. 물론 말이 좋아 격리지, 간식 시간을 빙자해 석이를 방에 두고 문을 닫는 것뿐이었는데 제법 딱 알맞게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석이는 습식 간식을 좋아했고 간식을 먹고 나면 늘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몸 단장을 했다. 그 시간이 짧지 않아서 대근이는 충분히 쉴 수 있었다.


대근이와 둘이 있는 시간이 소중한 만큼 앞서 말했듯, 두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있는 시간도 소중하긴 했다. 완전히 다른 성격의 두 고양이가 섞이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잘 놀다가 "아이씨! 적당히 하라니까?" 정도로 대근이가 성질을 내는 루틴이랄까. 그중 우리 가족이 제일 즐거워했던 장면은, 석이가 대근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알로 그루밍을 하는 장면이었다. 처음엔 다정하게 그루밍을 하다가도 석이는 대근이를 잘근잘근 깨물었는데, 꾹 참던 대근이가 한 번씩 폭발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귀여운지 순간 포착을 위해 휴대폰을 곁에 끼고 살 정도였다.







잘 있는 줄 알았는데
시선 강탈 대근이 발, 석이 밀고 있음



석이 미용 실패, 대근이 호기심 폭발



사이좋게 잘 있다가




응?



에에?



(...)





시작은 다정했다










좁은 공간에 굳이 대근이 따라 온 석



작은 방석에 굳이 따라 올라오는 석



대근이는 혼자 자고 싶다








그래도 둘은 단짝!

이러나 저러나 붙어 있고


마따 따비도 같이 물고


캣타워도 공유하는 사이!




2018년의 두 고양이는 이동이 잦았다. 가족에게 큰 이동이 있었고 대근이와 석이도 우리의 식구였으니 우리의 변화에 매번 동행했다. 영역이 바뀌는 스트레스에도 두 고양이는 잘 참아주었고, 시작부터 그랬듯 대근이와 석이는 완전히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포항에서 부산으로!




석이는 부산에서 살게 됐고 대근이는 나와 함께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엄마의 마음은 99% 괜찮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나는 편안하게 내 일에 집중했다. 그 해는 내가 처음으로 독립 출판 수필집을 냈던 해였다. 수필을 쓰고 싶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 일에 대한 압박은 내려놓고 내 모든 걸 글쓰기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집에만 있다 보니 대근이와 더 가까워졌다. 대근이와 놀다가 퍼뜩 글감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글을 썼다.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져있다가 대근이가 칭얼거리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아이와 놀았다.









끝없는 옷장 사랑





이건 선 것도 앉은 것도 아니여
















누나가 안티.jpg


누나가 안티2.jpg




더는 이 젤리를 만질 수 없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대근



















움직이는 대근이








보고 싶은 내 새끼
















영역이 옮겨지는 것보다 나와 떨어지는 게 더 스트레스인 것 같다던 말을 기억해, 대근이는 그 해 나와 여러 번 부산을 왔다 갔다 했다. 그만큼 본가에 자주 갔다는 말이기도 한데, 다행히도 대근이는 양쪽 모두를 편안해하는 듯했다. 잦은 부산행의 포인트는 오랜만에 만난 형제냥의 어색하고도 가까운 사이였다.








첫 번째 부산행,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남



두 번째 부산행, 추석이다냥!






띠디- 냄새 분석 중







그 맘 때쯤 석이는 벤토나이트가 아닌 두부 모래를 사용하고 있었다. (딱히 석이의 선호도는 없었음) 대근이는 벤토 모래를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본가에 오래 있을 게 아니니 화장실을 이해할 거라는 게 착각이었던 걸까. 억지로 마음에 안 드는 화장실을 참고 쓰다가 어느 날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혼자 거실에 있는데, 대근이가 큰 방에 깔아놓은 편백나무 매트 위에서 묘한 자세를 잡는 걸 봤다. 순간 감이 왔다. 저것은... 소변을 보려는 자세다! 깜짝 놀란 나는 다급하게 달려가 맨 손으로 대근이의 소변을 받았다. 더럽다는 생각도 못했다. 다행히 편백나무 매트에는 소변이 소량만 떨어졌기에 빠른 수습이 가능했다. 깨끗이 손을 씻고 대근이에게 사과를 하고, 그 길로 벤토나이트 모래를 사서 따로 부어주었다. 그제야 대근이는 만족한 듯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사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사건일 수 있는데, 난 그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대근이의 토사물을 손으로 받고 소변을 손으로 받아내는 나. '아, 이런 것도 사랑이구나' 그리고 다시 한번 사람의 관점에서 동물을 이해하려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대근이는 어지간하면 참고 쓰는 성격인데,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포항에도 다녀 옴!







서울에서도 형제냥의 조우는 이어진다!




대근이는 나와 한 몸이었다. 대근이는 나의 집이었다.

서울에서 하루 이틀을 산 것도 아니고 제법 긴 시간을 서울에서 지내왔는데도, 대근이가 없었을 때의 서울이 떠오르지 않았다. 똑같은 집. 이름으로써의 집은 변함이 없는데 그 집을 채우는 온기와 의미가 예전과는 달랐다. 화곡동 집의 표면적인 모습이 내 취향으로 바뀌어 갈 때도 대근이는 늘 집 안에 있었다. 집 구조를 옮기는 것, 가구를 사는 것. 하나부터 열까지 대근이를 고려하지 않은 게 없었다.








내 정신적 지주






잠자는 고양이를 깨워보았습니다












옷장 너무 좋아해서 숨숨집 하나 더 사드림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어
















누나, 언제 나오냥!


















그 해 겨울이자 2019년의 마지막.

나는 연애의 참견 2에 드라마 작가로 들어가게 됐다. 그동안 해 오던 정석 예능과는 완전히 달랐다. 드라마 대본에 적응하느라 처음엔 일주일 동안 4시간도 잘 수 없었다. 오롯이 내 머릿속에서 드라마 구성과 장면, 대사가 나와야 하니 그만큼 머리가 복잡했다. 심지어 100% 창작이 아니라 실화(사연)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를 써야 하다 보니 책임감도 남달랐다. 누군가의 사연을 지나치게 희화화하여 각색해서도 안됐고 사연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끔, 자신의 사연에 2차 가해를 입지 않게끔 신경을 써야 했다.

밤새 대본을 쓰다 지쳐 바닥에 드러누우면 대근이가 살포시 자신의 몸을 나에게 기댔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침대 위에 누워 대근이의 배를 만지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내가 돈을 벌어야 대근이에게 좋은 걸 많이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대근이는 내가 잠들지 않으면 본인도 자지 않았다. 그래서 그 맘 때쯤 대근이는 늘 내가 출근한 뒤 계속해서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아아, 얼마나 힘이 됐는지.



대근이가 그립다. 얼마 전 49일이 지났기에 더더욱 아이가 보고 싶다.

얼마 전, 49일째 되던 날 대근이를 보내 준 산에 올랐다. 보수공사 중이라 목적지까진 갈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대근이가 "나는 잘 가고 있어, 곧 누나한테 갈게. 그러니까 청승 떨지 말고 이만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마저도 사람의 생각으로 위안을 찾고자 함이겠지만, 정말로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전 16화15. 네 살의 대근, 동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