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여섯 살의 대근

너를 추억하며 (6)

by 흐를일별진



2020년. 나름 적응을 하고 있던 연애의 참견2에서 완전히 넉다운이 됐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6개월은 채우자는 일념으로 버텼다. 그 6개월 내내 나는 대근이에게 참으로 많은 시간을 의존했다.

대근이의 골골송을 들으려면 집중을 요했다. 들릴 듯 말 듯 골골송을 들려줬기에 대근이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면서 귀와 온 신경은 아이의 목 언저리에 집중했다. 그러다보면 나를 힘들게 하던 생각이 뭐였는지,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몇번은 대근이의 골골송을 들으려 집중하다가 그대로 잠에 빠져든 적도 있었다. 그렇게 잠들었다가 깬 날이면 대근이는 자신의 방석을 나에게 빼앗긴 채로 맞은 편 책상 위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대근이와 셀카 찍기 참 힘들쥬?


대본 쓰다 지쳐서 잠시 휴식







컴퓨터 아래에서 칭얼칭얼



다만 그 해는 나뿐만 아니라 대근이도 지난 해의 잦은 이동에 대한 휴우증을 겪고 있는 듯 했다. 영역에 대한 스트레스가 다른 고양이 보다 적은 것 같다고 해도, 이동에 대한 스트레스는 똑같았을 텐데. 난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하복부에 탈모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막염이 만성으로 접어들었다. 다행히도 대근이가 눈을 긁거나 간지러워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오른쪽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만 봐도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간헐적으로 돌리던 공기 청정기를 24시간 내내 돌리기 시작했고, 모래는 수시로 먼지가 안 나는 걸로 갈아 엎었다. 매일 매일 눈을 닦아주고 안약을 넣는 걸 잊지 않았고 하복부 탈모 완화를 위해 스트레스 완화 보조제와 오메가3를 챙겨먹였다. 물론 비린 걸 싫어하는 대근이는 오메가3를 먹을 때면 곧바로 도망을 시도했다. (전쟁인 듯 전쟁아닌 오메가3 먹이기)


내가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애 몸이 안 좋아 보이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근이가 아프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으니까.








놀아주는 건 고정 루틴!




대근이가 장난감을 좋아하면 월매나 좋게요?


입도 짧고 호기심도 짧은 대근










새로 산 숨숨 집!



















화곡동 집을 좋아했던 이유는 볕이 잘 든다는 거였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고르게 태양 빛이 방을 채웠다. 대근이는 특히 해질 무렵의 볕을 좋아했는데, 해가 들어오는 부분에 누워 몇 번이나 뒹굴 뒹굴 따스함을 만끽했다.



세상 무해한 조합, 햇살과 고양이







내 수면 메이트













자는 애 깨웠음










탐험 중




지형지물(?)을 잘 쓰는 편





















대근이가 비닐에 집착했다. 평소 사람이 먹는 건 거들떠도 안 보고 내가 뭐라도 먹고 있으면 응아를 묻는 시늉을 하는 등, 구분이 명확했는데 언제부턴가 비닐 핥는 일을 습관적으로 했다. 비닐을 씹거나 먹는 건 아니었고 진짜 단순히 핥기만 했다. 바스락 소리에 반응하고 갖고 놀다가, 끝은 늘 핥는 걸로 놀이가 마무리 됐다.

비닐이 있는 곳엔 어디든 대근이가 있었기에, 한동안은 비닐을 들고 대근이를 내 품으로 유도했다. 그러한 행동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비닐 = 누나의 마사지 = 편안함이란 공식이 성립된 건지, 대근이의 비닐 사랑이 제대로 정착해버린 것 같았다.














요상한 자세의 대근씨, 호-잇!












*ㅁ*)/










치명적 귀여움에 강제 뽀뽀행







고의적으로 밟고 이동하는 듯














대근이는 흐르는 물을 좋아했다. 세면대 위에 서서 내가 물을 틀어주면 쫄쫄쫄 흐르는 물을 받아먹었다. 혀를 낼름거리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난 대근이가 세면대 위에 올라와주기를 기다릴 정도였다. 고민 끝에 투명 정수기를 샀다. 혹시라도 대근이가 적응을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우리 대근이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당일부터 잘 이용해 줬다. 정수기의 특성상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을 마실 수 있었는데, 역시 대근이는 흐르는 물만 고집했다. 저 무렵 대근이를 위해 산 것 중에 가장 뿌듯했던 게 바로, 정수기다.




희번뜩!



스카프... 못 잃어!















손으로 교감





ㅂ... 발로 교감



뀨❤️











작가 일을 하든 개인적인 일을 하고 있든, 뒤 돌았을 때 대근이가 저런 모습으로 앉아 있으면 난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췄다. 미치도록 사랑스러워서 눈 앞이 깜깜해진 것도 있지만, 급한 일따위 대근이의 미모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나는 오롯이 내 새끼에게 집중했다. 한 번씩 멍-을 때리고 있던 대근이가 내 시선을 의식하면 날 보고 가느다랗게 울었다. 나는 "오우..."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대근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파묻었다. 대근이는 몸을 움직여 내가 기댈 구석을 만들어 주었고, 그럼 나는 대근이에게 기댄 상태로 대근이의 배를 만졌다.


아직도 대근이의 냄새가 생각난다. 그 깨끗하고 포근한 향기가 내 코를 가득 채우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향이 떠오를 때마다 지금, 내 곁에 대근이가 없다는 걸 실감한다.



















내 시선이 닿는 곳 어디에나 대근이가 있었다. 대근이가 조용히 있어도 조잘 조잘 뭔가 말하고 있어도, 나는 그 작은 방 어딘가에 대근이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대근이가 보이지 않을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어김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나에게 왔고, 내가 무서운 꿈이나 슬픈 꿈을 꾼 뒤 불안에 눈을 떴을 때도 대근이가 보였다. 그 시선이 나에게는 일상과 같아서, 나는 애써 언젠가 찾아올 대근이와의 이별을 모른 척 했다.







































사실 이 해에도 나는 본가를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전해는 대근이를 데리고 다녔지만, 2020년엔 그러지 않았다는 거다. 확실히 이동 중에 받는 스트레스가 심해 보였고 하복부 탈모와 결막염을 겨우 가라 앉혀 놓았기에 나는 또다시 대근이가 힘들어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다만 대근이를 놓고 본가에 다녀오는 거다 보니 최대 2박 3일을 넘길 수 없었다. 혼자 있을 대근이가 걱정돼 홈캠을 설치해두고, 수시로 확인했다. 분명 아이는 잘 있는 걸 확인 했는데도 왜 그렇게 마음이 쓰이던지... 서둘러 집에 돌아오면 절대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다. 혼자 있었던 대근이에게 사랑으로 보상하듯 온전히 대근이에게 집중했다.

사실 주변 몇몇은 그런 나를 걱정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집순이었던 나인데, 대근이와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나는 바깥 생활을 하지 않았으니까. 작가 일이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 주기적으로 밖에 나갔지만, 그 외에는 약속을 잡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결국 친구들 사이 내 별명이 연예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늘 대근이를 우선 순위에 뒀다. 물론 후회는 없다. 그만큼 대근이에게 올인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게 남은 후회의 양이 적은 거니까.

다만 또 다른 후회가 있다면 조금 더 대근이에게 붙어 있지 못했다는 거다. 나의 세상은 대근이의 세상보다 훨씬 넓었는데, 내가 전부였을 대근이의 세상에 해준 게 얼마 없을까봐. 그래서 대근이의 마음이 슬펐던 적이 있었을까봐, 다시 생각해도 그런 것들이 너무 후회가 된다.






벌써 대근이를 떠나 보낸 시간의 게시물까지 단 두 편이 남았다. 2021년과 2022년. 그 시기의 사진을 정리하고 그 무렵의 추억들을 작성하고 나면, 그때서야 대근이를 완전히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래서 무섭다. 이 매거진의 완성과 브런치 북으로의 모음이 완전히 대근이를 떠나 보내는 의식의 끝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끝이 나면 정말 이 상실을 받아들이게 될 거 같아서 두렵다.


아직도 대근이가 떠나기 전, 건강할 때 마지막으로 찍어두었던 영상을 돌려본다. 병원에서 내가 직접 찍은 한 장의 사진과 간호사님이 보내주신 두 장의 사진은 지울 수도, 볼 수도 없다. 어떤 이들은 마지막으로 호흡기를 떼는 순간을 영상으로 남겨놓던데, 난 그 모습을 찍을 수도 없었다. 내 기억 속에만 선명한 대근이의 모습을, 그 모습에 이르는 2022년의 과정을 어떻게 써 내려갈 수 있을까. 대근이가 보고 싶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 행복했던 그때로 한 번만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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