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추억하며 (7)
2021년은 내 인생 가장 안정적인 커리어의 해였다.
들쭉 날쭉 선배들의 입맛에 맞춘 출퇴근이 아니라 고정적인 스케줄이 보장되는 프리랜서 계약. 엔터테인먼트의 영상팀 메인 작가로 일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동안 배워온 것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작가 업무의 특성상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기에, 후배와 머리를 맞대고 탄력적으로 일했다. 일반 직장인에 비하면 꿀 같은 근무였다 할 수도 있지만 두 작가의 머리에서 한 달에 10개가 넘는 기획이 튀어나온 걸 감안하면, 뇌를 깎는 근무였다 보는 게 맞을 거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시스템상 대근이와 나의 관계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늘 고정된 시간에 집에 있었고 연애는 커녕 소개팅도 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업무 외 시간은 모조리 대근이에게 쏟았다. 가끔 혼자 본가에 다녀오긴 했어도 늘 CCTV로 대근이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모든 게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은 한 해였다.
출근이 늦긴 했으나 하루 일과는 상대적으로 빨리 시작했다. 대신 빨리 시작한 일과 중 반을 대근이와 함께 보냈다. 잠에서 깨면 대근이가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옆의 (본인) 취침 방석에 자리를 잡았다. "일어났어? 그럼 이제 나랑 좀 더 자"라고 말하듯이 잠투정을 부렸다. 그럼 난 대근이의 귀여움을 핑계삼아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대근이 배를 만지며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보면, 이내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서 잠시 움직이다가 다시 대근이와 함께 잠에 빠져드는 묘한 오전 루틴. 난 그 루틴이 좋았다.
혹여나 집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고정적이다 보니 대근이가 늘 옆에서 알짱 알짱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중엔 아예 일 하는 자리에 방석을 놓거나 숨숨짐을 놓거나, 이동장을 올려놓는 방식으로 대근이를 옆에 놓고 일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순간이 참 위안이 됐던 것 같다. 대본이 잘 안 풀릴 때, ASMR 편집을 하다 덩달아 내가 졸릴 때, 잠시 하던 걸 멈추고 대근이를 만지고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으니까.
그 해엔 집 구조를 바꿨다. 기존 동선은 벽을 따라 푹신한 곳을 너머 대근이가 창문까지 갈 수 있는 동선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집이 좁아 보이는 감이 있어서 대근이가 뛰어 노는 창문 쪽 공간과 바닥에서 나와 놀게 될 공간을 크게 나눴다. 가구를 옮기고 집을 꾸미는 동안, 대근이는 내내 뭐가 신기한 듯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잘 정돈해 놓은 집에 대근이가 있는 풍경.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 적적한 집을 가득 채우는 건 사람의 온기가 아니라, 날 바라보는 작은 고양이의 시선이었다.
어린 아이가 조용할 수 없는 것처럼 호기심 많은 고양이라면 이런저런 사고 쯤은 쳐 줘야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근이는 사고를 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사고를 치면 난 그 모습이 귀여워서 늘 사진으로 남겼다.
대근이는 내가 뭘 사오든 제일 먼저 검사했다. 그래서 나중엔 내가 뭘 사오든 대근이 앞에 하나씩 늘어놓으며 "오늘 내가 뭘 샀냐면~"하고 내가 먼저 브리핑을 했다. 간혹 대근이의 간식을 사올 때면 여기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뭔지 물어보기도 했는데, 한 번씩 그런 내가 우스워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남들이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하려나. 근데 뭐, 미친 사람이면 어떻겠나. 나는 이미 대근이에게 미쳐버렸는 걸.
대근이의 방석을 새로 구매했는데, 어찌나 좋아하는 지 사진의 반이 방석 위에 있는 사진이다. 물론 그 방석 위에서의 대근이는 대체로 참을성이 커지는 상황이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해해주고 넘어갔다. 직사각형으로 적당한 폭신함을 자랑하던 그 방석. 방석 위에 덮어뒀던 블랭킷에 콕콕 박혀있던 대근이의 털. 가끔 블랭킷에 발톱이 걸려 어쩔 줄 모르던 대근. 어쩜 이렇게 모든 기억이 생생할까.
새로운 캣타워를 샀다. 대근이가 창문 앞 공간을 조금 더 자유자재로 돌아다니길 바라며, 창틀에 설치하는 돔 형 캣타워. 나중에야 투명한 돔에 들어갔지만 처음엔 그 돔이 무서운지 도통 들어가질 않아서 온갖 애를 썼다. 물론 대근이가 돔에 들어가길 바란 마음은 누나의 이기심. 투명 돔에 눌려있는 대근이의 속살이 궁금했던 거긴 한데, 예상치도 못한 시점에 돔 안의 대근이를 발견하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역시 고양이란 집사가 포기해야 뭔가를 해주나 보다. 밀당 전문가.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가을.
추석을 맞아 나는 긴 시간 동안 본가에서 지낼 결심을 했다. 대근이를 혼자 두고 방문 탁묘를 맡기자니 영 불안해서, 나는 대근이를 데리고 본가로 향했다. 이번엔 KTX가 아니라 비행기로.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괜찮았지만 착률할 때 대근이는 구토를 했다. 난 그런 대근이가 안쓰러워 혼자 눈물을 삼켰다. 대근이를 데리고 오는 게 최선이었냐 묻는다면, 최선이었다 답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안쓰러움은 본가에 도착해서 대근이가 노는 모습을 보면 이내 사라지곤 했다.
서울 집과 달리 이사한 부산의 본가는 다락방이 있었고, 창문이 많아서 애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이 넘쳐났다. 아빠가 창문마다 캣타워를 설치해 놓았기에 수직 공간도 충분했고, 우다다하며 뛰어 놀기도 좋았다. 거기에 시종일관 투닥투닥 장난치며 놀 수 있는 동생 석이까지 있었으니 난 내심, 대근이가 이러한 이동을 이해해주실 바랐다.
그러나 본가에 오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본가에 있던 고양이 석이에게서 벼룩이 발견된 것. 애 털을 빗어주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벼룩을 보고 식겁했다. 그 길로 석이의 털을 밀고 약을 바르고, 대근이에게도 벼룩이 옮았을까 싶어 겸사 겸사 목욕을 시켜주었다. (털 속에서 발견된 벼룩만 다섯마리 이상) 엄마도 석이의 몸에 붙은 벼룩이 충격이었는 지, 다음날 곧바로 친환경 방충제를 사서 집 구석구석에 발라 버리더라. 이러나 저러나 해도 역시 우리 두 고양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들 똑같지 싶다.
엄마는 그 이후 석이의 몸을 계속해서 살피며 남은 벼룩 한 마리 없이 아이를 케어했고, 나 또한 서울로 돌아와 계속해서 대근이를 살폈는데... 혹시가 역시가 됐다. 어느 날, 대근이 방석 위에 검은 실밥 같은 것들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말려 있어서 뭔가 싶었다. 아무리 애를 닦고 방석을 청소해도 다음 날이면 같은 검은 부스러기가 방석에 떨어져 있길래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본 건 벼룩의 배설물이었다.
아아, 역시 석이의 벼룩이 대근이에게 옮겨왔구나! 그길로 약을 사놓고 대근이의 털을 밀었다. 사이 사이에 숨어있던 벼룩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약용 샴푸로 목욕을 시키고, 약까지 발라놓고 나서야 나는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대근이의 더 완벽한 창문 공간을 위하여! 새로운 부착형 캣타워를 '또' 샀다. 와디즈 펀딩으로 구매했는데, 덕분에 대근이의 창문 앞 동선이 더욱 더 풍성해졌다. 그리고 나의 즐거움도 더 풍성해졌고. 대근이는 본가의 석이에 비하면 높은 곳을 정말 좋아했다. 내 옆에 있다가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위쪽으로 올라갔는데, 부착형 캣타워를 설치해 놓으니 주로 그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2021년의 대근이와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개인적인 일들은 둘째치고 우리의 관계가 가장 안정적이었던 한 해였으니까. 대근이와 나는 매 순간 함께였고, 그런 시간이 계속 될 줄 알았다. 그 다음해가 우리의 마지막 해가 될 거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예상할 수도 없었다. 안정적인 우리의 삶이 영원할 줄 알았고, 나의 커리어 또한 큰 문제없이 쭉쭉 나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엄마는 더 큰 집으로의 이사를 권했지만 나는 매번 거절했다. 대근이를 데리고 이사를 갈 수 없으며, 이만한 가격의 집을 구할 수도 없을 거니와 내 나이가 있는 한 이사를 한다면 결혼을 해서 신혼집으로 가는 게 이상적인 루트가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나는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당시의 안정적인 상황에 안주하고 있었다. 대근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고. 굳이 그 생활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결혼 후 이사를 핑계대긴 했지만, 난 그냥 대근이와 지내는 그 삶에 만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