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서울에서 지낸 지 대략 10년.
나는 2년 주기로 송파구, 관악구, 용산구, 강서구를 넘나들었다. 그중 살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을 때가, 바로 용산구 청파동 3가에서 거주할 때였다.
당시 집으로 향하는 길은 숙대입구역 10번 출구로 나와서, 우측에 있는 작은 공원을 지나는 것으로 시작됐다. 빨간 조명이 강렬한 굴다리 앞에 붙은 작은 공원이었다. 그 공원을 지날 때면, 나는 제법 잦은 빈도로 중년의 노숙자와 마주쳤다. 지저분한 옷, 감지 않은 머리, 아무렇게나 신문지를 깔고 앉아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그들은 가끔 둘셋씩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삶의 팍팍함을 나누기도 했다. (늘 큰 목소리로 대화하기에 내용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보통 그곳을 지날 때의 나는, 일에 지쳐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터덜터덜 길을 걷다가도, 공원의 노숙자들을 보면 약속한 일과인 것처럼 그들을 내 위안의 소재로 삼고는 했다.
‘최소한 나는 포근한 집도 있고 용돈을 주는 부모님도 있고, 힘들긴 해도 남들이 보기엔 화려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으니 길에서 잠드는 저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진짜 행복한 거다. 투덜거리지 말자.’
하지만 비교의 자기 위로는 얼마 가지 못했다.
나는 번번이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타인과 비교를 해서 내가 더 낫다는 걸 억지로 찾아내는 것. 타인의 불행에 빗대어 내 행복을 증명받는 것. 그러한 생각은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고, 굉장히 위험한 비교의 위안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사연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선택했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그냥 자유롭게 지내는 엄청난 부자일 수도 있는 거다. 그들의 인생을 나는 절대 알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들을 판단할 자격도 없었다. 제삼자인 타인일 뿐이니까.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외형적인 부분만 보고선 멋대로 불행을 단정 지었다. 심지어 내 행복을 위해서,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생각해보면 굳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집중해서 행복과 만족감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좀 더 수월하게 행복을 증명받는 길을 택했다. 씁쓸했다. 언제부터, 내가 남과 비교하지 않고서는 행복을 확인하지 못했나 싶어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마음을 막았다.
어쩌다 본능처럼 또다시 타인의 삶을 비교 대상으로 삼으려 하면, 곧바로 나를 향한 채찍을 들었다. 그래야만 했다. 누군가의 삶을 불행으로 끌어내리지 않기 위해서. 마음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나는 꼭 그래야만 했다.
나의 행복이라는 건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한 게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의 행복일 때 완성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