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버는 프리랜서의 N잡러 시도
세상이 바뀌었다. 손재주만 있으면 뭘 하든 돈이 된다. 아니 돈으로 만들어 낸다. 다만 그 수익이 얼마만큼 나를 기쁘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나는 느리게 적응했다. 다행히 전공이 사진이라 이것저것 찍어둔 건 많았고, 지난 4월엔 몇 달 뒤의 나에게 부탁해 후지x100v라는 값비싼 카메라도 샀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인스타그램에 미친 듯이 업로드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수필집을 내보고 싶어서 브런치를 이용해 POD 제작 시스템의 맛을 봤고 이후 독립 출판으로 200부를 찍어내 모두 판매했다. 책이 다 팔리고 난 후 몇 번 정도 추가 입고 문의가 들어왔으나 다시 책을 찍어내진 않았다. 결국 귀차니즘이 문제였고 수필집도 딱 거기까지였다.
고정으로 다니던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끝나고 개인적인 일로 현재 부산에 내려와 있다. 일이 있지만 일이 없었다. 당연히 수입은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는데, 우습게도 방값이 나가지 않으니 현상 유지가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서울을 떠나서도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비싼 카메라와 내 감각을 믿기로 했다. 평소 사진이 프린트된 문구를 좋아하는데 마땅히 내 취향인 걸 찾을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을 걸고 사진 문구를 제작하기로 했다.
처음엔 직접 디자인해 제품을 만들고 샘플을 제작해 보려고 했다. 샘플을 확인한 후 제대로 된 상품을 뽑아낸 뒤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 제안서를 넣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샘플을 제작하는 과정부터 어려움에 부딪혔다. 업체는 소량 인쇄가 부담스러웠고 나는 불량품과 재고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는데 머뭇거렸다.
그러다 우연히 마플샵이라는 굿즈 제작 쇼핑몰을 발견했다. 한 개씩 소량 제작이 가능한데다 기존 템플릿에 사진 배치만 잘하면 되는 시스템이라 편리했다. 일단 샘플을 확인해보자는 생각으로 휴대폰 케이스와 마스킹 테이프 몇 개를 주문했다.
완성된 샘플은 만족스러웠고 그사이 마플샵의 셀러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된 나는 곧바로 지원서를 제작했다. 브랜드명과 제품 판매 계획,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과 샘플로 제작한 제품을 가능성 삼아 나를 어필했다. PPT는 <미리 캔버스>라는 무료 플랫폼을 활용했고 사진은 전부 직접 찍었다. 그렇게 지원서를 넣고 며칠 뒤 셀러 승인 문자를 받았다.
N잡러 시도는 좋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뭔가를 해보려 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작가 일과 문구 제작/판매를 모두 병행할 순 없었기에 마플샵은 제법 괜찮은 타협이었다. 물건 제작, 배송, CS 전반을 업체에서 해결해주다 보니 상대적으로 내가 많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디자인비 개념으로 제품 판매 수익을 가져가기 때문에 모든 걸 해결하는 판매자들에 비하면 적은 수익일 수 있으나, 그건 부수적인 문제였다. 무작정 뛰어들어 피를 보지 않는 것. 작가 업무와의 균형을 맞추는 것. 그리고 내 사진의 가능성을 먼저 테스트해 보는 것. 수익은 둘째치고 내가 만드는 제품이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환영받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내 마플샵의 브랜드명은 <흐를일별진>이며 카피는 <타인의 일상이 취향이 되다>이다. 제품에 특별한 순간을 담진 않았다.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하루. 나의 하루가 누군가의 취향을 타고 그 사람의 공간을 채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내 방에 두고 싶은 소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https://marpple.shop/kr/ilmare_jin
시작은 휴대폰 케이스와 마스킹 테이프이지만, 현재 휴대폰 배경화면을 디지털 상품으로 판매 중이며 추후 패브릭 포스터부터 그립톡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