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당일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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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새로운 곳, 서울이 아닌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있는 곳. 도란도란 사람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사이 내가 혼자 있음이 여실히 증명되는 곳. 고개를 들면 하늘이 있고 앞을 바라보면 수평선이 있는 곳. 그랬다.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청량리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왕복 기차표를 예매했다. 반쯤은 충동적이었지만 가고 싶은 곳은 대략 정해두었다. 바다로 향하는 기찻길, 창문 밖 자연을 눈에 담았다. 장마가 온다더니 거짓말처럼 맑고 높아진 하늘을 보며 나는 마음껏 순간을 만끽했다. 하얀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구름은 어딘가에 뭉쳐 있다가 어딘가로 퍼져나갔다. 구름을 따라 달리며 바다를 기대하고 있는 내 상황이 거짓말 같아서, 글을 쓰고 싶었음에도 창밖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이 꿈만 같아서 한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오늘,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가장 익숙한 바다에 과거의 나를 내던지러 가는 길. 텅 비어버린 내 사진첩에 새로운 걸 채우러 가는 길. 이 모든 건 <나>로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다. 관계, 걱정, 미련, 후회. 사람이 얽힌 모든 것에게서 벗어나 진짜 나 혼자로서 시간을 재설정하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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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역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바다로 나갈까 고민하다가, 어머님 한 분이 혼자 운영하시는 것 같은 작은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님은 내게 혼자 왔냐 물으셨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늦은 점심으로 (좋아하는) 라면을 먹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낯선 장소의 이방인. 그 와중에도 정을 담아 오가는 마음. 가게에 혼자 앉아 있는 나. 모든 게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혼자 온 여행의 시작과 끝을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전 저녁을 먹으러 다시 들르겠다고 말한 뒤 가게를 떠났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이 여행의 최종 목적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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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정동진은 많이 변했고 그 시간만큼 나도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그대로라, 모래가 발에 닿기도 전에 슬리퍼를 벗어들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햇살을 품어 따뜻해진 모래에 한쪽 발을 쓱 밀어 넣었다. 수많은 모래알이 내 발에 모여들었다. 나는 한 발짝 두 발짝 모래사장을 밟으며 바닷가로 걸었다. 동해 특유의 짠 내음에 미역 냄새가 섞였다. 홀리듯이 예쁜 조개껍데기를 주워 바닷물이 들어오는 젖은 모래 위에 섰다. 새파란 파도가 해안가로 접어들며 모래와 섞이고 새하얀 거품을 만들었다. 육지를 집어삼키듯 순식간에 내 발을 감싸는 바닷물이 미치도록 시원해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진짜, 내가 바다에 있구나.
태양을 등지고 바다가 보이는 모래사장에 앉았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에어팟을 빼고 줄 이어폰을 핸드폰에 꽂았다. 서른 살 제주에서 매일 들었던 <노리플라이>의 노래 너머로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얹혔다.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타닥타닥 들려오는 노트북 타자 소리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다만 바닷가 앞에 서면 생각이 넘쳐흘러 많은 것들을 두고 와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바다 앞에 서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이 순간의 기분과 이 아름다움을 빠짐없이 남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동안 날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한 발짝 물러서기만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상황과 감정에 매몰되어 시야가 좁아져 있었던 게 문제였다. 몇 번을 생각해도 내가 처한 상황에는 답이 있고, 내가 해야 할 행동과 품어야 할 마음가짐 또한 명확한데, 나는 답을 내리는 게 두려워 피하고 또 피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길고 긴 인생의 찰나를, 어차피 어제가 될 오늘을, 이미 어제가 된 과거를 놓지 못했던 건 나였다.
바다 앞에선 모든 게 똑같다. 끝없는 바다 앞에선 나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처한 상황도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나는 그래서, 바다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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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의 작은 책방 <이스트씨네>에는 영화가 있었다. 벽 곳곳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서가에는 영화 기반의 책들이 놓여있고 음료 메뉴로는 무려 술이 있었다. 강릉 맥주와 하이볼! 무조건 술을 마셔야지 생각하던 중, 한쪽 벽면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바다 영상 위로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OST가 흘러나올 땐 소리를 지를뻔 했다.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천천히 책방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귀여운 굿즈 몇 개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 한 권,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각본집을 샀다. 입도 못 다물고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흘러서, 나는 서둘러 (강릉 맥주는 품절) 하이볼 한 잔을 시켜 <변영주> 감독 이름의 영화관 좌석에 앉았다. 심장이 뛰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가장 좋아하는 걸 하고 있었으니까.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다. 내 마음에 집중했다. 생각이 들면 생각이 드는 대로 생각이 떠나면 떠나는 대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뒀다. 생각날 줄 알았던 것이 생각나지 않았고 복잡할 것 같은 마음은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한동안 수시로 나를 휘감던 죄의식도, 애써 모른 척 눈뜬장님이 되어 나를 세뇌하던 순간도, 온갖 감정적 혼란도, 영화와 책과 음악과 함께 단순 해프닝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웨스 앤더슨의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깨달았던 게 다시 떠올랐다. 인생은 죽음이 엔딩인 한 편의 연극.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듯, 겪지 않으면 성장할 일 없고 비극이 없으면 희극의 가치를 알 수 없다.
내가 겪고 있는 수많은 일들은 결국 삶이라는 연극(영화) 안의 숱한 스토리일 뿐이며, 되돌아보면 그 모든 사건은 극을 구성하는 플롯 아래 일어나야 할 일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행위, 즉 지금과 멀어지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현실적인 것이 때로는 비현실 같으며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 때로는 현실처럼 나를 찾아온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내가 나로서 바로 서야 하며 이 삶의 주인공은 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삼인칭으로 바라보는 건 꼭 필요한 일이고.
아아, 이 글을 쓰는 내내 <이스트씨네>에서 들려온 음악은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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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안 마시고 버텼다. 정동진을 떠나기 전, 작은 동네 카페에 들르기 위해서. 바다가 보이는 곳은 아니지만 큰 창문 너머 동네의 풍경이 보이는 곳. 내가 돌아갈 시간에 맞춰 영업을 종료하는 곳. 중간중간 열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카페의 이름은 <나의 하루>였다.
작은 가정집 같은 카페 내부의 한쪽 벽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계절은 반드시 돌아오고 그때가 되면 태연하게 다시 꽃 피울 것] 나는 그 글귀 아래 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였던가. 환절기,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무렵, 가을이 겨울이 될 무렵, 차가운 겨울이 봄이 될 무렵. 나는 늘 <사이>를 좋아했다. 과정은 아플지라도 꽃이 피고 생명이 탄생하고 공기의 향이 바뀌는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도 삶도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멀어지는 관계가 있고 멀어질 줄 몰랐으나 거리가 생겨버린 관계도 있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각자의 자리를 찾은 사이도 있었고 내 손으로 놓아버린 가장 행복했던 사이도 있었다. 한때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후회는 오래가지 않았다. 매 순간 과정에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는 내가 받아들여야 할 몫이라 생각했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것이고 인연이 아니라면 그대로 멀어지겠지.
삶이 뜻대로 되지 않듯,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사이>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다. 모든 건 정해진 바이며 어떤 사이든 만남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결과와 관계없이 좋았던 시절을 마음에 담으면 그뿐이다. 과거는 과거이기에 지난 일은 미련 없이 내려놓아야 한다.
끝을 내야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으며 어떤 관계든 금이 간 건 되돌릴 수 없다. 금이 간 사이를 깨 버리고 새롭게 쌓아 올릴지언정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마저도 인연이고 운명이라면 이전과는 다른 모양으로 새로운 마음을 쌓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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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기차는 저녁 7시 30분. 시간이 부족했다. 보고 담는 것에 취사선택이 필요했다. 결국 저녁 식사를 포기하고 선택한 건, 해안가가 아닌 정동진의 골목길을 걸어 바닷가로 가는 거였다.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코스였다. 주말인데도 사람이 적은 골목길을 따라 걷는데, 바람에 바다 향기와 풀 향기가 섞였다. 해 질 무렵의 붉음이 낮은 산과 건물 위에 걸렸다. 나는 지는 해를 등지고 계속해서 걸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행복이라는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감정이 들었다.
그 순간 내가 혼자인 게 좋았다.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이해받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일부러 크게 웃지 않아도 됐다. 걷다 멈추고 걷다 멈추면서 내 속도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자유로웠다. 타인의 그 무엇도 내게 영향을 줄 수 없는 완벽한 자유였다. 좋아하는 곳에서 이방인이 된 기분은 생각 그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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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의 끝은 다시 바닷가. 몇 시간 전의 바다와는 사뭇 다른 색깔의 바다는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나 또한 몇 시간 사이에 달라져있었다.
많은 게 정리되고 있음을 체감하며 나는 차가워진 모래 위를 맨발로 걸었다. 제주도 말로 미지근하게 따뜻한 정도를 말하는 <맨도롱>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발을 통해 맨도롱한 기운이 올라왔다. 온기와 함께 내가 바다에 동화되는 것 같아서,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보고 싶었던 바다였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바다의 향을 가져갈 수 있다면 전부 가져가고 싶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이대로 머물고 싶었다. 온몸이 일몰의 해무에 젖을 때까지 멍하니 앉아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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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마음과 관계없이 돌아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일정을 미루기엔 표도 없었다. 그 사이, 포장마차 아주머니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저녁 식사를 포기하긴 했지만, 여행의 마지막은 계획한 대로 장식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정동진역으로 들어가기 전, 작은 비타민 음료 하나를 사서 가게 어머님께 건넸다.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하다고 오늘 못 먹은 잔치국수는 다음에 또 와서 먹겠다고 말했다. 어머님은 환한 미소와 고마움의 표현으로 내게 답했다. 그 표정이 너무 따뜻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길, 나는 마음으로 오늘의 여행을 끝냈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은, 사실 어머님과 한 게 아니라 나 자신과 한 약속이었다. 앞으로 내게 일어날 모든 일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주기적으로 마음을 비워내겠다는 결심이었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듯 오늘이 끝나야만 내일이 시작된다는 걸 안다. 이 여행이 끝나야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할 수 있기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 또한 그곳에 놓고 오는 게 맞다. 나는 오늘 많은 걸 바다에 놓아두었고 그만큼 많은 걸 얻었다.
여름이 무르익는 7월 1일. 나는 가장 나다운 여행을 했구나. 안녕, 오늘의 정동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