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라는 용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곧게 서 있는 나무야 찍으면 찍을수록 상처가 생기니 당연히 넘어가겠지만, 사람은 마냥 곧게 서 있을 수 없는 존재라 안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것
어쩔 수 없어 그만두는 것
자기의 권리나 자격을 쓰지 않는 것. 순화어는 ‘그만둠’
포기라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포기는 용기다. 내려놓을 각오 완벽하게 버릴 각오를 하는 것. 말이 좋아 내려놓고 버리는 거지 내 뜻과 관계없이 상황에 몰려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사람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일도 있다. 노력 여하를 불문하고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땐 빠른 포기가 답이다. 안 되는 일을 끌고 가며 자신을 깎아 먹는 짓은 소모적일 뿐이다.
세상은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올드하지만 우스갯소리로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그건 뭘 모르는 소리다. 겪어보지 않고 세상과 맞서 싸우기를 강요할 순 없다. 포기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포기하지 못하는 게 미련한 거지.
일어나지 않은 일, 잘 됐을 경우를 예상하며 희망 고문을 하거나 당하는 것도 쓸모가 없다. 말 그대로 희망이다. 참고 버티면 잘 될 수도 있지만, 그 시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도 나쁜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성공보다 지금의 자신이 중요한 것뿐이니까. 포기한다는 건 삶의 우선순위가 나에게 있다는 소리다.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다. 그동안 여차저차 끌고 왔는데 이젠 모두가 한계에 부딪힌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워낙 긴 시간 지속되어 온 문제라 오히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 더 이상 감정적으로 호소하며 우울함에 빠져 있을 순 없었다. 해결을 위해선 선택이 필요했다. 남은 선택이 포기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진짜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시작은 희망이었다지만, 그걸 실현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다쳤다. 몸을 다치는 거면 차라리 낫지, 사람을 향한 실망과 마땅히 요구해야 하는 일을 함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건 이 일에 얽힌 모두를 상처입혔다.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다. 그저 포기해야 할 시점이 왔을 뿐이다.
개인적이든 회사차원이든 실패를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럴 걸 저럴 걸 이미 지나간 일을 기반으로한 자위도 의미가 없다. 선택하지 못하는 이는 모든 걸 잃어도 할 말이 없는 법. 버릴 용기가 없다면 가질 용기도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