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경험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경험의 정도가 우리 자신을 100% 올바른 어른으로 인도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통찰력'이라는 이름으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몰랐던 친척들의 불화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게 됐다. 단순히 '싸운 거야?' 하는 일차원적인 상황 해석이 아니라 '오랜 대립 끝에 돌아섰다.'는 씁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거다.



하지만 표면적인 사건의 속을 알게 된 것과 더불어, 요즘 부쩍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나는 세월의 흐름이다.


엄마의 흰머리 염색 기간이 한 달에서 2주로 줄어들고, 아빠의 손에 자리 잡은 굳은살이 유난히 아프고, 엄마를 그토록 힘들게 했다던 할머니가 기력을 잃어간다는 것과 할아버지가 지폐 한 장, 두 장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나이 들어가는 본인을 향한 안타까움과 죽음의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까지 알았다. 예전 같았으면 모른 척했거나 사소하게 넘겨버렸을 세월의 신호인데, 이제는 제법 그 신호를 묵직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씁쓸하긴 하다. 가끔은 모른척하고 싶기도 하고,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때가 나았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가족에게 향하는 통찰력이, 나로 하여금 뒤늦은 효도를 하게 한다는 거다. 소중한 이들의 서글픈 변화를 알아차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마음껏 진심을 표현하는 일. 아마도 내가 나이 들지 않았다면, 결코 지금처럼은 할 수 없었겠지.



나는 못난 딸이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내 꿈을 이유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제법 긴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있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나 나였기 때문에,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가족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던 존재일 뿐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써야 할 통찰력을, 늘 나를 힘들게 하는 타인에게 쓰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렇게 서른이 훨씬 넘어서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게 된 나.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제는 그 통찰력을 오로지 가족을 위해 써야겠다고. 이제라도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걸 감사히 생각하면서, 엄마 아빠에게 좋은 딸이 되어야겠다고.


언젠가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 엄마 아빠는 어른의 통찰력으로 나를 살피고 챙기고, 사랑으로 보살펴줬었다. 그러니 이제는 첫째 딸인 내가, 엄마 아빠를 살피고 챙기고, 보살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고자 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엄마 아빠가 힘들 때 그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 깊이 다짐해 본다. 정말,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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