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제 전공은 잠수이며, 전문 잠수부로 활동합니다.”
내가 정말 잠수부인 건 아니지만… 사실, 위의 말이 전혀 틀린 건 아니다. 그동안의 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거나, 처해있는 상황이 버거워질 때면 늘 제일 먼저 도망을 쳤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싫어서, 조금이라도 오르막 코스가 보이면 냅다 뛰어내렸다. 심지어 직업병으로 얻은 빠른 눈치와 판단력 때문에, 나는 도망쳐야 할 순간을 정확하게 알았다. (굳이 없어도 되는 판단력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도망은, 때때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잠수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의 잠수는 작년 하반기였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서울의 인연들을 모른 척하며 지냈다. 당장 앞에 닥친 문제에만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생각했다. 그래서 사적인 연락은 거의 받지 않았다. 모른 척했고, 연락이 온다 한들 피해버렸다. 그 무렵의 나는, 오로지 포항의 가족에게만 집중했었다.
그리고 2019년 올해의 봄.
나는 오랜 잠수를 끝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다만 올라와서도 누군가를 만나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을 뿐.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이 생각 저 생각, 가족에 대한 게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생각에 잠겼다.
문득 내 곁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짧은 깨달음이 나를 스쳤다.
사실 인간의 잠수는, 결코 맨몸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거였다. 숨을 보장하는 산소통을 몸에 단단히 고정하고 잠수를 시작해야 했다. 긴 시간의 잠수가 가능한 이유는 산소통의 산소가, 끊임없이 인간에게 생명을 주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생각해보니 나의 긴 잠수가 가능했던 건, 단 한 번도 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준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내가 그 사실을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 그들은 늘 내 옆에 있었다. 산소가 떨어져 죽지 않게끔, 내 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적절한 잠수 시간을 찾을 수 있게끔, 충분히 만족스러운 잠수를 끝내고 안전하게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게끔. 그들은 늘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게 절대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 특히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혼자만의 문제에 갇힌 친구를 지켜보는 것도 많이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끝까지, 나의 잠수에 대해서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얼마 전 모처럼 모두가 만나 그간의 일을 나누었을 때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어주고 안아줬을 뿐, 그들은 나를 질책하지 않았다.
"우리는 네가 돌아올 줄 알았어."
그들의 존재는 나에게 산소와 같았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문제에 앞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상황을 마주하고, 이겨내고. 나를 기다려준 이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긍정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었다.
대신에 언젠가는, 내가 소중한 인연들의 산소가 되어주고 싶어 졌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진심을, 나 또한 더 큰 진심으로 돌려주고 싶었다. 늘 그들의 옆에서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마음껏 애정을 주고 응원하고 싶어 졌다. 솔직히 많이 늦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는 부디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오늘도 그들에 대한 감사함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