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 시절 우리들의 아지트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고등학생 시절. 나와 함께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던 친구들은 커피나 빙수보다는 전통차를 선호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야자가 일찍 끝나거나 주말에 쉴 때면 어김없이 한 곳에 모였다. 그 시절 우리의 아지트 전통 찻집 '다산'으로 말이다.



다산은 낡은 건물의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가파른 편이었는데, 우리는 늘 그 계단을 일렬로 오르면서 온갖 장난을 치곤 했다. 앞서 가는 친구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거나 허리를 간지럽히거나. 별 거 아닌 상황에도 웃음이 터졌다. 익숙한 공간으로 가는 안정감과 행복함, 그 정서적인 충만함을 느끼며 가게의 문을 열면 늘 '딸랑'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우리가 다산에 도착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전통찻집 다산의 내부 조명은 살짝 붉고 어두웠다.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음악이 사장님의 취향에 따라 흘러나왔다. 내부 공기는 조금 습한 편이었는데, 종종 원목 테이블의 향기가 섞이기도 했다. 중앙 홀에는 입식 테이블이 모여 있고, 사각 공간의 모서리에는 오픈 룸 형식의 좌식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늘 편하게 앉아 신나게 떠들 수 있는 구석 룸 자리를 택했다.



신발을 벗고, 낮은 원목 테이블 주변으로 둘러앉은 우리는 금세 편안해졌다. 아빠 다리를 하거나 드러눕거나,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 아주 자유로운 모습으로 순간을 즐겼다.


우리는 그곳에서 공부나 수능이나 현실에 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늘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너희와 함께 있는 게 너무나도 행복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고, 우리가 영원했으면 좋겠고, 그 순간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놨었다. 아주 가끔은 꿈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당시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이미 꿈을 이룬 것 마냥 친구들에게 사연을 쓰면 읽어주겠다며 호언장담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외의 대부분은 깔깔거리며 웃고 장난치기 바빴지만.



한참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주문한 전통차가 오면 모두들 약속한 것처럼 조용해졌다. 사장님이 알려주시는 음용 방법을 듣고 열심히 따라 했다. 그 당시 내가 주로 마셨던 차는 '이슬 차'였다. 첫맛은 씁쓸하지만,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달달한 나는 맛이 나던 특별한 차. 그때만큼은 오로지 차에 집중했던 것 같다.


"인생은 이런 거데이. 처음엔 힘든 일만 있는 것 같아도, 시간 지나면 결국 행복한 일이 오게 돼있다. 신이 그냥 세상을 만든 게 아니라니까. 행복하고 불행의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잖아. 그러니까 마냥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


온갖 허세를 부려가며, 전통차를 통해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양, 열여덟의 우리는 어른을 흉내내기도 했었다. 문학 동아리 친구들이다 보니, 사실 감성 코드가 아주 잘 맞기도 했고. 그 순간의 우리는 정말 남 부럽지 않은 행복을 누렸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우리의 아지트를 잊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에서 만난 연인을 데리고, 다시 다산을 찾기도 했다. 예전에 앉았던 자리에 똑같이 앉아서, 친구가 아닌, 마음을 준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나눴다. 처음의 추억도 과정의 추억도,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러니 다산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작가라는 꿈을 이루고 난 후, 다시 찾은 다산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니까. 예전의 모습은 하나도 없었다. 다산이 있던 자리엔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와인 바가 생겨 있었다. 나는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가 없어서, 한참을 건물 앞에서 멍하니 서성거렸다.


10대의 우리가 20대가 되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첫 연애가 끝이 난 것처럼. 더 이상은 애를 써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확인한 기분이었다. 사라진 다산을 보면서, 나는 뼈 아프게 세월을 실감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30대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지트가 그립고,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아지트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오히려 그곳이 사라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다산이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의 아지트도 한결같았을 거다. 매 순간 새로운 추억이 생겼겠지. 서울에 있는 내가 포항에 갈 때마다 우리는 그곳에 모였을 거고, 대다수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안 좋은 추억이 생길 수도 있었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고, 시간이란 많은 것을 바꾸는 법이니까. 아지트에 대한 추억의 결말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거다.


오히려 아지트가 사라졌기 때문에, 우리의 추억이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거나 퇴색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학창 시절이라는 서랍 속에, 영원히 보관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추억은 아름다웠다. 그런 의미로, 때로는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언제든지 마음속에서 꺼내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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