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행복해져요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행복하다는 말이 왜 쉽게 나오지 않는지. “좋다” “괜찮아” “나쁘지 않다”는 말로 대체하게 되는지. 행복한 걸 인정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걸까. 행복과 불안. 행복과 죄책감이 동시에 올라올 때는 왜 그런 건지. 왜 행복이란 감정만 유독 왜곡 없이 받아들이기가 힘든 건지.
의식적으로 행복하다는 말을 쓴다. 행복이라는 두 글자에 담긴 의미를 좀 더 가볍게 받아들이려 한다. 좋았다는 개념과 비슷하지만 그 보다는 조금 더 간지러운, 더 낭만적인 마음을 담아서. 매일 어떤 부분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곱씹는다.
아침. 다리에 닿는 이불의 감촉이 부드러울 때. 암막 커튼 너머로 밝은 오전의 빛이 들어올 때. 발에 닿는 바닥의 기운이 따뜻할 때. 잘 정돈된 집안을 볼 때. 전날 밤의 스킨 케어가 잘 먹은 듯 아침 거울 안의 내가 마음에 들 때 허허. 집 밖에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공기의 향이 좋을 때. 햇살이 포근할 때. 놀이터에 있는 사람들을 봤을 때. 버스가 바로 도착했을 때. 버스 안, 가장 좋아하는 우측 첫 번째 자리가 비어 있을 때. 한강을 지날 때. 창 밖으로 나무가 보일 때. 회사로 걸어가는 길, 익숙한 풍경이 새롭게 보일 때. 문득 예전 생각이 날 때. 커피를 내릴 때. 글을 쓸 때. 사랑받았던 기억이 날 때. 다정한 말이 생각났을 때. 사랑받았음을 깨달을 때. 걸음 걸음마다 내가 그 순간에 존재함이 실감날 때. 조금씩 내려놓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때. 머리가 하는 생각과 마음이 품은 생각이 동일할 때, 그래서 모처럼 단순해졌다는 생각이 들 때. 결과와 관계없이 내가 품은 마음 자체가 사랑스러울 때. 이유를 찾아냈을 때. 횡단 보도 앞, 햇살이 들어오는 곳을 골라 서 있을 때. 좋은 서점을 찾았을 때. 귀여운 아이를 봤을 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음을 받아들일 때. 하늘이 높을 때. 구름이 솜사탕 같다고 느껴질 때. 글이 쓰고 싶어질 때. 내 사랑의 모양이 따뜻하게 느껴질 때. 내 곁에 있는 존재들을 느낄 때. 내가 갖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에 집중할 때. 감사함을 느낄 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좋은 영화를 봤을 때. 좋은 음악을 들을 때.
쓰지 못해도 쓰지 않아도, 생각지도 못할 만큼 사소한 순간에서도 나는 행복을 알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어디서든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우연의 가치를 알았던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마음, 그 자체가 소중하다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어린 아이처럼 나이 들고 싶었다. 동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유치한데서 오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랬었다.
시야가 좁아져 있을 땐 하늘을 보지 않는다. 바로 어제의 하늘도, 오늘 아침의 하늘도 기억하지 못한다. 출근 길 늘상 보는 놀이터의 풍경도 기억나지 않는다. 퇴근 길 아름답게 내렸을 땅별도 기억나지 않는다. 비극에 매몰되어 있을 땐 가라앉은 내 감정만 명확하게 보인다. 가라앉았다는 건 위가 존재한다는 뜻인데,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
행복을 찾아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고개를 든다. 향기를 맡는다. 주변을 본다. 발걸음에 집중한다. 발에 닿는 것들을 살펴본다. 소리를 듣는다. 사람들의 말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람 사는 소리를 듣는다. 건물의 간판을 본다. 골목길을 보고 지붕의 색깔을 본다.
가라앉은 감정을 깨우는 건 감각이다. 행복은 가장 익숙한 것에 숨어있기에, 그 익숙함을 놓치는 순간 마음은 잠에 빠져든다. 그러니 잠에서 깨려면 익숙한 걸 다시 보는 수 밖에.
지난 것들에 새로운 게 덧입혀진다.
기억이 기억으로 확장된다. 그 과정에서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기반으로한 나만의 속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다. 나는 늘 나다운 걸 원했고, 진짜 나다움이란 삶을 후려치는 상황 속에서도 나날이 발전하는 거니, 그러려면 정신을 차려야지. 안그런가. 행복을 잡는 건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