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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Feb 29. 2024

옛날 애들의 업무 중 에어팟






한동안 SNL에서 MZ세대를 풍자하듯 귀에서 빼지 않는 에어팟을 보여줬던 때가 있었다. 영상을 편집하고 음악을 작업하는 업무가 아닌 이상 돈을 받는 일터에선 귀를 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방송이나 짤을 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개인주의를 살려가며 일을 하고 싶으면 본인의 능력치를 키워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낫지 않나. 제도의 이점은 누려가며 개인적인 영역까지 지키고 싶다는 건 이기적이지 않나. 요즘 애들은 정말 요즘 애들답다.

...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내 귀엔 에어팟이 꽂혀있다. 이 글을 쓰는 곳은 회사이고 나는 요즘 애들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옛날 애들 정도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들을 욕할 자격이나 있을까.

변명을 하자면 내가 에어팟을 끼는 이유는 개방형 구조의 회사 때문이다. 크지 않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뻥 뚫려있으니 사생활이라는 게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적인 영역은 앉은 눈높이의 파티션 뿐. 그마저도 개개인의 배려 역량 및 지능(난 저런 사회성이 지능이라 생각한다)에 따라 언제든 침범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업무상 주요 미팅이 회사에서 이뤄지게 되면 온갖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는 것. 간혹 나를 의식해 목소리를 낮추는 경우를 맞닥뜨릴 때면 커피가 마시고 싶은 척 회사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러나 자리를 피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일이 많을 땐 궁여지책으로 에어팟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메신저로 톡을 하나 보냈다.


- 저 이어폰 꽂고 있으니 편히 대화하세요.


에어팟의 시작은 이러했다. 그런데 웬걸, 이게 생각보다 편했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나. 회사라는 게 일 이야기만 오가는 곳은 아니다. 온갖 사적인 이야기와 가십이 업무 중에 오간다. 회사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심한 곳은 유독 심하다.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듣게 된다. 대화에 참여하기 싫은 티라도 내면 최악의 경우 “혼자 바쁜 척한다”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도 듣는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내가 어떤 직종에서 일을 했을지 궁금해할 수도 있는데, 나는 방송작가였다. 온갖 여자 짓이 난무하는 수다 판. 그땐 에어팟이고 줄 이어폰이고 꿈도 못 꿨는데. 제작사 정규직으로 옮기고 나선 소문이나 여자 짓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이 줄어드니 조금 더 편하게 행동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사회성은 적당히, 중요한 건 일을 잘하는 거니까.



사실 나의 경우 영상, 사진을 편집하는 경우가 잦아서 에어팟을 끼는 게 자연스럽긴 했지만, 야금야금 착용 시간이 늘어나긴 했다. 구성안을 쓰거나 마케팅 안을 정리할 때도 에어팟을 꼈다. 우습게도 능률이 올랐다. 다만 노래 덕분이라기보다는 주변 소리가 차단 되어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포인트였다. 물론 영상 작업 외에는 노이즈 캔슬링을 쓰진 않았다. 누가 날 불렀을 때 대답을 못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에어팟을 끼되 노이즈 캔슬링은 쓰지 않는 것. 그게 타협 방식이었다. (물론 지금은 딴짓을 하고 있지만 할 일은 애초에 끝냈다)



생각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환경이 만들어져야 그에 따르는 지시 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 정도가 될 것 같은데... MZ세대들의 특성 중 하나를 개인주의 및 개인 영역에 대한 가치 상승으로 생각한다면, 그 이면엔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았던 기성세대의 태도에 대한 환멸이 있는 게 아닐까. 옛날 사람인 나 또한 사적인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 선배들이 미치도록 싫었던 때가 있었다. 다만 나는 행동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고 요즘 애들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뿐 아닐까.


모든 것은 사람마다 다르니 개념을 일반화할 순 없지만, 최소한 내 행동을 돌아보게 되긴 했다. 나는 명확하게 꼰대 기질이 있는데, 자기반성을 못 하는 꼰대는 상종 불가능하니 정신을 차려야겠어.

... 라는 말도 에어팟을 끼고 재즈를 들으며 하는 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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