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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May 07. 2024

휴대폰 때문에 다녀온 지옥

왜 전화를 안 받아서




나의 루틴 중 하나는 하루에 한 번 꼭 엄마와 통화 하는 일이다. 미주알고주알 그날의 생각과 일어난 일들을 엄마에게 말하며,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날은 생각이 많은 날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출 수 없어서 엄마에게 말하며 정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지금쯤이면 씻고 누워있겠지, 루틴을 예상하며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 번더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대에 엄마가 휴대폰을 어디에 두는지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전화를 못받을 이유가 없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걸었다. 신호음만 흘렀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를 괴롭히던 기존의 생각은 사라지고 또 다른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두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걸었다. 20분이 넘도록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온갖 상황이 떠올랐다. 반려묘를 잃어버린 걸까. 그래서 지금까지 찾아 다니고 있나. 엄마아빠 중 누군가가 다쳤나. 그래서 일부러 내 전화를 안 받나. 실제로 그랬던 적이 있었다. 바닷가 바위 위에서 넘어져 손가락이 부러진 엄마는 그 사실을 내게 숨겼다. 심지어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땐 병원이라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땐 낮 시간대라 딱히 걱정없이 넘어갔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당장 KTX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남동생에게 연락해 엄마아빠에게 전화를 해보라 했다. 엄마아빠는 동생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분명히 뭔 일이 났다. 기차표와 비행기표를 찾기 시작했다. 부산에 있는 엄마 친구의 번호를 찾아 동시에 연락을 하려고 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안도감은 외마디 내지름으로 표현됐다. “엄마!” 내 목소리에 놀란 엄마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당황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들었다. 화낼 일이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에 엄마의 잘못은 없었다. 아빠도 마찬가지고. 간혹 걱정되는 마음이 화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실수할 뻔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지. 다행이라 말했다. 다음부턴 나 또한 엄마아빠의 전화를 안 받는 일 없이 잘 챙길테니, 우리 가족 서로에게 걱정을 끼치지 말자고 했다.


들어보니 상황은 이러했다. 엄마는 친구가 하는 가게에서 일을 돕고 늦게 퇴근했다. 휴대폰을 가방 속에 넣어두고 밀린 집안일을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씻은 뒤 방으로 와서 화장품을 바르다가 문득 휴대폰을 떠올렸다. 휴대폰의 진동은 풀려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빠는 어땠건가. 요즘 새벽부터 파크를 치러 나가는 아빠는 오후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방해 금지 모드를 설정해뒀단다. 얼마 전부터 해당 모드를 쓰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던 거다. 나는 그 사이 지옥에 다녀온 거고.

생각만해도 아찔했다. 상상했던 모든 일들이 진짜 일어났다면. 찰나의 시간에도 내가 찢겨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아무 일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일로 인해 얻은 교훈이 있다. 걱정하는 마음을 절대 다른 감정으로 표출하지 말 것. 걱정은 걱정으로. 아무 일이 없었다면 다행으로. 조금 더 다정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다는 것. 가까운 사이인만큼 감정의 왜곡은 쉽게 일어난다.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의 마음이 기저에 깔린 채, 분명 다행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걱정을 하게 만든' 상대방을 탓하게 되는 거다. 사실 걱정이라는 감정은 '내'가 품은 건데, 내 감정을 상대에게 화로 전이시킬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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