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대학교 과 동기 오빠 중 한 명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부고를 받았다. 잦은 빈도는 아니더라도 종종 SNS에 소식을 올렸던 오빠였다. 못 본 지는 오래됐지만, 그 소식이 늘 반가웠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오빠의 부고에 동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았다. 생각 없이 영정 사진 속 오빠를 마주했고 고개를 숙였고, 멍하니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왔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빠의 부재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냥 어디서 잘살고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상복을 입고 있는 오빠의 가족을 마주하고서도 말이다.
그 후 시간은 흘렀고, 나는 대학 시절의 인연들과 큰 접점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SNS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오빠의 계정을 발견했다. ‘아, 오빠가 있었네.’ 하는 가벼운 생각을 하며, 홀린 듯 계정에 들어갔다. 그곳엔 이미 본 적 있는 오빠의 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을 기점으로, 그의 소식은 올라오지 않았다. 당연한 거였는데, 나는 그 명백한 흐름에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몇 년 만에 오빠가 이곳에 없다는 걸 실감한 거였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죽음에 대한 실감이 심장을 쳤다. 어떤 이의 부재를 깨닫는 건 한 순간이더라. 시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랬다. 오빠는 다른 곳에서 잘살고 있었다. 내가 숨 쉬는 이 땅 위가 아니라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그는 지금 웃고 있을까?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제야, 진정으로 오빠의 명복을 빌어줄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민에 빠졌다.
나와 연결된 오빠의 계정을 끊어볼까. 막상 부재를 실감하고 나니 남아있는 그 계정이 힘들게 느껴졌다.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오빠의 계정을 삭제하지 못했다. 차마 삭제할 수 없었다. 이 계정이 나에게서 사라지면, 영영 오빠를 떠나보내게 되는 것만 같았다. 보내야 하는 사람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SNS를 통한 일상의 흔적이 요즘 방식의 애도이자, 먼저 떠난 청춘을 기억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그 빛났던 청춘을, 내 대학 생활을 함께했던 소중한 친구를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지우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 계정은 쭉 남아있을 거다. 오빠는 너무나도 행복했던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주는 이들에게 "나 보고 싶었어?" 하며 웃어줄 거고, 그의 일상은 SNS 상에서 영원히 되풀이될 거다.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그거면 됐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오빠의 존재 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큰 위로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