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바다는 카멜레온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나의 졸업 작품은 <외할머니의 바다>라는 제목으로, 외갓집과 그 앞바다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주인을 먼저 떠나보낸 후 비어 있는 집의 생활 흔적과 외할머니가 지켜보곤 했을 바다의 색감을 잡아내는 작업.


집의 흔적이야 구석구석 추억을 떠올리며 담아내면 그만이었는데 문제는 바다였다. 내 바다 사진에는 규칙이 있었다. 무조건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하고, 1분 이상의 장노출로 매일 같은 시간, 일출과 일몰을 촬영할 것. 그러다 보니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는 그 변덕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으며, 죽도록 추운 날에는 덜덜 떨면서 촬영을 이어가야 했다. 하필 필름이라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대충 찍고 들어가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컷을 뽑아야 했다.



하지만 공들인 만큼 사진의 결과물은 놀라웠다. 분명 같은 시간 똑같은 바다를 찍었는데, 사진 속의 바다는 모두 달라 보였다. 한 장소에서 찍은 바다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도 다양한 색깔들이 바다 위에 펼쳐져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예상 가능한 색감이 없었다. 정말 크나큰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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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작품, 외할머니의 바다 中



사실 나는 매일 같은 시간, 똑같은 바다를 보면서 결과물이 다양하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바다라는 건 움직이지 않는, 늘 그 자리에 있는 뻔한 소재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실제의 바다는 예상과 달랐고, 내가 바다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단 1%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러한 바다의 반전은, 사람에게도 해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바다를 마음대로 판단했듯, 우리는 늘 누군가를 개인의 잣대로 판단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때로는 그 당사자마저도 자신의 색깔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바다가 그랬듯, 사람에게는 다양한 색깔이 존재하고, 그 색깔이 언제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다르게 보이는 건데, 지금껏 나는 타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사람이란 뻔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상황과 감정에 지배되는 동물이다 보니, 모든 이들의 행동이나 성향에는 패턴이 있다며, 오만한 생각을 품기도 했다. 나는, 내 마음대로 타인을 판단하던 사람이었다.



문득 "너답지 않다"는 말속에 숨겨진 판단의 잣대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반성했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됐다. 그러니 함부로 타인을 정의하지 않고, 긴 시간 내 옆에 있어 주는 소중한 이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색깔이 있고, 나는 그 색깔을 존중하고 싶었으니까. 우리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 그들 마음속에 담겨 있는 다채로운 색깔을 마음껏 칭찬하고 아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신에게는 어떤 색깔들이 숨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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