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무뚝뚝한 경상도 가족의 변화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우리 집은 경상도 집안 그 자체여서 서로에 대한 애정 표현에 굉장히 인색했었다. 그나마 내가 조잘조잘 일상을 떠들면서 말이 많은 편인데, 그런 나조차도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와 같은 솔직한 감정 표현은 거의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표현이 없었을 뿐 우리 가족은 화목한 축에 속했다. 최소한 큰 사건 사고 없이 유지된 가족이니까. 그러나 2년 전부터, 우리 가족이 화목한 축이 아니라 진짜 화목해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선 늘 혼자 힘든 마음을 견뎌냈던 엄마가 소소한 생각과 고민을 가족과 공유하기 시작했고 (진심을 털어놓는 것은 아주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포옹하는 것을 즐기기 시작함과 동시에 사랑한다는 말도 제법 익숙하게 한다. 심지어 무뚝뚝함의 끝판왕이었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나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변화가 행복했다.

처음에는 모두 함께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개선이 이루어진 걸까 생각했다. 그러다 이 변화의 시작을 곱씹어 올라가다 보니 그 시점에 내가 있었다. 모든 변화에는 계기가 있듯, 우리 가족의 경우는 서른 넘어 능글맞아진 첫 딸이 계기가 됐던 거다.





사실 2년 전의 나는,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위기 아닌 위기를 겪으면서,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실감했었다.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존재는 언제 어떻게 사라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지금을 소중히 해야 함을, 마음껏 표현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함께 있는 순간을 아껴야 함을 비로소 알게 된 거였다.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인생이란 게 위기가 없이는 깨달음도 없더라.



뒤늦은 깨달음인 만큼, 엄청나게 노력했다.


긴 시간 포항 본가에 머무르면서 가족들에게 끊임없어 표현했다. 나조차 어색할 정도로. 볼 뽀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늘 먼저 포옹했고 매 순간 사랑한다고 말했다. 가족이라고 해서 당연한 건 없으니,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실수했을 때는 하루를 넘기지 않고 사과했다. 뚱해있지 않았다. 가족이기 이전에 우리는 사람 대 사람으로 이어진 귀한 인연이었기 때문에, 소중할수록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변화는 가족뿐 아니라 나에게도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이들이 변하고 우리의 관계는 더 성숙해졌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 지속적인 표현 속에서 나 자신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모든 이들은 긍정적인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무뚝뚝하다 생각했던 가족들이 그렇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럴 뿐, 누군가 그 변화를 이끌어 주고, 자신만의 틀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진심>을 꺼내 주기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세상에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이는 비단 가족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닐 것 같다.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역시 나부터 변하는 게 맞다. 내가 변하지 않고 타인에게 변화를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선 나부터 한 걸음 한 걸음 행복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그 길은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가는 길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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