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찌질한 고백
고등학생이 될 무렵(벌써 십몇 년 전이다), 내가 살던 포항은 성적순으로 학교에 지원하는 '비평준화' 지역이었다. 그 무렵 내 성격은 남과 나를 그다지 비교하지 않는 편으로, 제도적으로 성적 차등이 있었으니 포기할 건 포기하고 좋은 학교를 욕심내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나와 다른 사람. 애초에 급이 다르니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정신 승리다.
그때의 내 세상은 우물과 같았다. 자존감이 높아서 비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속해있는 환경이 나를 딱히 예민하게 만들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거다. 누구도 공부로 나를 압박한 적 없었기에, 가장 중요한 건 꿈밖에 없었다. 막연히 될 거라고 믿었던 무적의 긍정적인 꿈.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세상이 변했다. 그 세상은, 내가 속해있는 내 주위의 세상을 말한다. 운이 좋았던 나는 그를 비웃기라고 하듯 금세 전쟁 같은 현실에 내던져졌다. 꿈이었던 직군인 방송작가는 비교의 성지에 가까웠고, 작가가 된 지 두 달 만에 내 몸무게의 7kg이 빠졌다. 무엇과 무엇을 비교했느냐. 잘 나가는 프로그램과 우리 프로그램을 비교하고 시청률을 비교하고 제작진을 비교하고, 언니들은 후배들을 비교하며 까 내리기에 바빴다. 학창 시절 내내 비교라곤 모르고 해맑게 지내다가 온갖 문제의 중심에 서게 되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비교는 폭언이 되고 폭언은 괴롭힘이 되고 막내는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됐다.
https://brunch.co.kr/@ilmare99/127
그 무렵의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그 시절을 버티며 눈을 떴기 때문이다. 세상은 지독하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매번 새로운 걸로 사람을 후려치는구나. 비교라는 건 대부분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구나. 물론 직업적인 특수성이 있다. 그건 인정한다. 여초 집단에서 오는 크나큰 비극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방송작가 직업군은 그 말이 현실이라는 걸 매번 실감하게 한다.
사람은 모두 가면을 쓴다
가면을 쓰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어떤 이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어떤 이는 상대방을 후려친다. 비교가 무서운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늪에 빠져든다는 점인데, 여초 집단에서 겨우 벗어났더니 이제는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이 문제다.
모두가 가감 없이 자신을 표현한다. 좋다. 그런데 어느 정도 과장도 한다. 어느 정도는 없는 말을 지어내기도 하고,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가 SNS를 가득 채운다. 그 와중에 요즘 SNS를 보면 월 300은 우스운, 성공한 사람들밖에 없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투자로 이익을 보고, 누군가는 기막힌 마케팅으로 팔로워 몇 십만을 모으고 수익이 얼마라며 비법을 전수한다. 일상 모든 생활 속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행복을 공유하고 연예인이 나오는 주요 프로그램은 그사세를 리얼이란 포장지를 감아 매일같이 쏟아낸다.
나는 그런 글과 영상, 사진, 콘텐츠를 볼 때마다 마음 어딘가가 불편해진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질투와 시기다. 그걸 인정하는 게 좀 괴롭다. 사람들의 글을 읽고 일상을 보며, 되려 나를 돌아본다. 그 모든 글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인생을 헛산 사람이다. 행복한 영상들을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짝 없는 외로운 사람이고. 누구도 내게 뭐라고 한 적 없고 누구도 내게 글을 읽고 영상을 보라고 한 적 없는데, 스스로 늪에 뛰어든다.
성공한 사람들 혹은 그렇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속도를 지키려니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해진다. SNS를 끊어야 하나 생각하다가도, 자기 PR 시대에 SNS는 핵심이라 꾸역 꾸역 흐린눈을 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비교하지 않는다'는 허울 좋은 마음으로 상대의 행복을 후려치곤 한다. 다 거짓말일 거야, 그 사람도 힘든 게 있을 거야, 조회수에 미친 인간들이야, 저렇게 살고 싶을까. 이 얼마나 비겁하고 알량한 마음인가. 그걸 깨달을 때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작가 언니들과 다를 게 없다.
학창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땐 어떻게, 그다지도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을까. '잘 나간다' '잘 되고 있다'는 기준이 성적일 때와 삶의 지표일 때가 너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