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리틀 포레스트의 현실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는데 몇 번이나 눈물이 났다. 지극히 평범하다고 하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그 아이러니한 일상의 행복 속에서, 나는 도시의 현실에 절망했고 늘 시골을 꿈꾸는 나와 마주했다.





나는 농사짓는 걸 정말 좋아했다.


노력한 만큼 결실이 나오는 것이 좋았고, 끼고 재며 실익을 따지는 인간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흐르는 땀이 보람 있었고, 일하는 내내 코끝을 스치는 시골의 풀 향기가 좋았다. 가끔씩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면, 눈을 가득 채우는 하늘과 나무의 풍경도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시골을 좋아하는 나도, 유독 힘들어했던 게 바로 여름날의 농사일이었다.


한때 철없이 여름 농사에 뛰어들어, 이모의 일을 돕던 때가 있었다. 나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호기롭게 상추밭에 들어가 잡초를 뽑겠다고 결심했다. 보통 같았으면 날아다니는 모기가 상추밭 위에 가득했을 텐데 그날따라 모기가 보이지 않았다. “좋다! 오늘, 날 잡았다” 싶어서 나는 몇 시간을 쭈그려 앉아 잡초를 뽑았다. 쉬지도 않고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얼마 후 문득 정신을 차린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내 엉덩이와 허벅지 뒷부분에 엄청난 테러가 일어났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미칠 것 같은 가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상추밭에서 잡초를 뽑았고, 잡초 사이 숨어있던 모기떼들은 내 피를 뽑았다. 아주 얼씨구나 잔치를 열었던 것 같다. 살면서 처음 겪어본 간지러움이었다. 욱신거리면서 아플 정도였으니까. 남은 잡초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더 있다가는 엉덩이로 기어갈 판이었다. 나는 곧바로 일을 멈추고 집으로 뛰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나의 고통은 엄마와 이모의 큰 즐거움이 되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이지만)



그날 이후, 나는 2주 가까이 간지러움과 싸워야 했다. 그 와중에도 엄마와 나는 시골을 포기하지 못했고, 매번 이모 집에 들러 농사를 도왔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준비성이 철저해졌다는 거 정도일까. 농사 필수품에 전기 파리채가 추가된 거다.


나는 집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일 하는 도중에도, 해질 무렵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파리채를 놓지 않았다. 내가 움직이는 길목에는 타닥타닥, 파리채에 벌레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팔을 휘두르며 허우적 거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우스워서 혼자 깔깔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난 뒤에는, 늘 눈 앞에 펼쳐지는 완벽한 시골의 정취에 빠져들곤 했다. 햇빛에 반사돼 반짝거리는 비닐하우스의 지붕, 시선의 끝에 머무는 낮은 산, 그 산에 걸린 하얀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풀 꽃, 종종 날씨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시골 향기. 물론 잦은 횟수로 모기가 그 낭만을 와장창 깨기는 하지만, 매번 느끼는 건 역시 나라는 사람은 시골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음속 깊은 충만함은 늘 자연 속에서만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 충만함을 위해서라면, 기껏 엉덩이 쯤 한 10분 정도는 내어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



(후일담이지만 그 무렵의 나는, '전기 파리채 휘두르고 다니는 젊은 여자애'로 어르신들의 입에 소소하게 올랐다더라)



여름날, 카트 끌고 밭일하러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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