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스물아홉 즈음, 내가 덜컥 작가 일을 중단하고 제주로 내려갔던 건, 긴 시간 동안 지속해온 모든 관계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컸기에,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적어도 제주에 가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인연이 아니라 적당히 가벼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사람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 되는 거였으니까. 어차피 얼마 못 가 끝날 관계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제주는 신기한 곳이었다. 대략 한 달 반 동안 월정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으로 머물렀을 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의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처음에는 분명 의도대로 가벼운 생활을 했었다. 그러나 제주의 자연이 주는 편안함은 나 자신을 드러나게 했고, 기한 한정의 안정감은 모든 것을 봉인해제시켰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받아들이는 건 상대방의 몫이라 생각했다. 일종의 도박과도 같은 내려놓음이었다.
우리는 만날 인연이었던 걸까.
다행히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나를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보이는 모든 모습을 오히려 '매력'이라 말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고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받는 것.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과 함께 자유로워졌다. 꾸미지 않았고 애써 노력하지 않았다. 행복하면 행복하다 했고, 우울하면 우울하다 마음껏 표현했다. 가끔은 한없이 감성이 올라 낯간지러운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런 서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추억 속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감사했을 뿐.
기한 한정의 짧은 인연이라 생각했던 그들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내 옆에 있다. 내가 힘들어하면 묻지 않고 기다려줬고 내가 약해질 때는 늘 응원의 말을 건넸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시간 속에 살았고, 서로를 알게 된 지는 4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건, 소중한 인연이란 만나온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거다. 진짜 인연이라면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나는 지난날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을 사랑할 예정이다. 한없이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것에 대해 깊은 감사함을 표현하면서, 나는 쭉- 그들의 옆에 함께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