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나의 첫 번째 연애 상대는 아는 게 많은 친구였다. 특히 책과 영화, 문화적인 부분에서 깊이 있는 지식을 자랑하던 친구였는데, 나는 늘 그 친구의 수준에 맞는 연인이 되고 싶었다.
서로가 아는 것을 나누고 좋은 것을 추천하기도 하고, 대화의 끝에는 늘 정서적인 충만함이 남는 연인이자 인생의 파트너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지인들에게 당당하게 소개해줄 수 있는 멋진 여자가 되고 싶기도 했었다.
그 친구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찾아가며 끊임없이 공부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B급 정서를 좋아했던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해당 감독의 모든 영화를 찾아봤다. 가끔은 인터뷰도 읽고 더 나아가 키치문화에 관해 공부하기도 했다.
그 사람이 나와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나는 몇 시간이고 영화를 보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그를 위해서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문화 공부에 빠져들었다. 호기심을 채워 나갈수록 부족했던 문화적 역량이 강화되는 게 느껴졌다. 아주 생산적인 변화였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논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에 드는 감독의 모든 작품을 보고, 그의 스타일을 파악하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지 알게 됐다.
그때부터 영화를 보는 건 나의 가장 큰 취미이자 끝없는 탐구영역이 되었다.
그의 영향은 영화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 인생 작가로 남아있는, 아멜리 노통브와 폴 오스터의 작품을 접하게 해 준 것도 나의 첫 번째 연인이었다. 그리고 한국 소설은 절대 읽지 않던 나에게 날카로운 일침으로 깨달음을 준 것도 그였다.
외국 소설은 번역체이기 때문에 순수 한국 소설의 문장을 따라올 수 없다며, 한국 작품의 문장을 공부하고 받아들이는 게 작가가 되려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설명했다.
나는 한국 소설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표현도 소재도 파격적이지 않다며, 무조건 외국 작품만 찾아 읽었다. 그의 말처럼 작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말만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노력의 의지도 보이지 않았던 거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나의 오랜 꿈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첫 연애 기간, 숱하게 나누었던 우리의 대화는 모두 지식으로 남았고, 그와 함께 본 많은 영화는 인생의 경험이 됐다. 처음에는 취향을 맞추려 노력했을지 몰라도, 나중엔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의 취향에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는 나를 바꿔놓은 사람이었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많은 부분을 사랑으로 채워주었고, 가끔은 조언자가 되어 나를 바른 곳으로 이끌어주기도 했었다.
비록 우리의 연애는 끝이 났지만, 나는 긴 시간 동안 그를 내려놓지 못했었다. 연애를 길게 하면 헤어지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도 그랬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 정서적인 모든 것에 그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것도 언젠가는 끝이 나더라. 추억이라는 게 낡아서 흐려져 버린 것도 있지만, 그가 남긴 것을 오롯이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과거가 옛일이 됐다.
지금의 그는, 한때 미완성이었던 나를 완성에 가깝게 끌어 올려준 사람, 단지 그 하나의 사실로만 남아있다.
가끔은 나의 첫 연애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처음이라는 게 정말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첫 연애가 트라우마로 남을지, 혹은 더 나은 자신을 위한 성장의 계기가 될지, 남녀 사이 연애의 끝이란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나의 ‘처음’이 그 사람이라서 참 다행이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