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를 일 별 진. 내 이름은 ‘일진’이다.
그다지 평범한 이름은 아니라서, “네 동생은 이진이냐” “일진회 소속이냐” “너 알고 보면 싸움 엄청나게 잘하는 거 아니냐” 등등의 삼류 개그를 들어왔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농담들. 그 농담이 짜증 나게 느껴질 무렵부터, 나는 내 이름이 싫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 카드 캡터 체리를 보고는 이름을 유체리로 바꿔 달라 조른 적도 있었고, 이상한 외국 이름을 붙여 세련된 척하기도 했었다. 때로는 친구들에게 내 이름을 ‘일진’이라 부르지 말고 ‘진’이라 부르라며 우기기도 했다.
나는 내 이름이 어떤 분위기로 불리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 맥락으로 내가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건, 내 이름에 성을 붙여 부르는 거였다. 워낙 이름이 세다 보니 성을 붙이면 어감 감당이 안 됐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로 성을 붙여 ‘유일진’이라고 부르면, 마지막 ‘진’에 강세가 붙어서 꼭 싸우자는 것처럼 들렸다. 정 없어 보이기도 했고.
장난기 많은 남자애들은 내가 싫어하는 짓을 골라서 했다. 그러니 그 무렵의 나는 정말 박 터지게 남자애들과 싸웠다.
흐를 일 별 진이라고 해서 이름의 뜻이 예쁜 건 인정하지만, 대다수는 뜻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일진’이라는 단어에만 꽂혀서 나를 놀려댔을 뿐. 나도 남들처럼 부드럽고, 딱 봐도 예쁜 이름이 갖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이름이 사랑스러워졌다.
부끄럽지만 그 계기가 된 건 나의 첫 번째 연애였다. 세상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며 “일진아”라고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살면서 내 이름이 그토록 간질간질하게 들렸던 순간이 없었다. 그가 이름만 불러도 나는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마치 열여덟 살 소녀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는 늘 나를 칭찬했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자랑스럽다, 네가 정말 좋다. 내 이름 뒤에 붙는 그의 예쁜 말은 낮아진 자존감까지 조금씩 끌어올렸다.
사실 학창 시절의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름 뒤에서 은근히 자존감 없이 살아왔었다. 여자로서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마음이 통하는 사랑 같은 건 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가 먼저 나를 좋아해 주고 내 이름을 불러줌과 동시에, 유명한 시 구절처럼 나는 꽃이 되었다.
그 무렵의 첫 연애는 5년 후 끝이 났지만, 그 사람이 걸어준 사랑이라는 이름의 마법은 계속해서 유지됐다. 한 번 올라간 자존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종종 위태롭게 흔들거리긴 해도, 어떻게든 다시 위로 올라갔다.
지금은 세상 그 누구의 이름보다도 내 이름이 가장 예쁘고 완벽하게 느껴진다.
흐르는 별. 은하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빠가 생각한 뜻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스타가 돼라’는 거였다. 언젠가는 그 이름처럼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며, 내 이름 석 자를 마음에 꾹꾹 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