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내내, 친구들은 내가 부처님 같다고 말했었다. 늘 웃고 신나게 떠들고 잘 놀기도 하는데, 정작 화를 낸 적이 없었으니까.
사실 나는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화를 표출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던 것뿐, 보통 감정을 속으로 삭이거나 내 탓을 하면서 화라는 감정 자체를 숨기곤 했었다.
화를 내지 않는 성향은 성인이 되어 첫 연애를 시작한 후로도 이어졌다. 아마 그 무렵의 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 번은 그 친구와 함께 파스타 가게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 몫으로 나온 크림 파스타의 면에 철 수세미 심이 박혀 있었다. 기분 좋은 데이트에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나는 슬쩍 철심을 빼 그릇 옆에 숨겨 두었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식사를 이어가려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 행동을 모두 지켜본 모양이었다.
왜 정당하게 요구할 것을 요구하지 못하냐고.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고, 부당한 상황이 오면 마땅히 지적해야 하는데, 왜 자꾸 착한 척 상황을 수긍하기만 하냐고, 그런 건 절대 착한 게 아니라 미련한 거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답답하다며 할 말은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내가 조금 더 당당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나중엔 얼굴까지 붉어져서, 속상해하며 말을 이어가는 그 사람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내가 미안해졌다.
그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나를 걱정하는 말인 것도 알고, 나를 위해서는 분명 고칠 필요가 있는 문제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오랜 성향을 바꾸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살피며, 천천히 대화를 유도했다. 그날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됐으면 좋겠는지, 어떻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우습게도 그때부터 특별 훈련이 시작됐다. 참지 않고 표현하는 법. 화가 날 때 화를 내는 법. 세상에 별걸 다 연습한다 싶은데, 가끔은 그 사람을 상대로 화내는 연습도 했다. 연극을 하듯이 그가 나의 연기에 대응해 주면서.
성과는 아주 좋았다. 한 번 알을 깨기 시작하니 밖으로 나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그 변화에는 작은 문제가 있었다.
그 사람과 있을 때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에) 적당 선에서 화를 멈추는데, 혼자 있을 때는 제어가 안 됐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나는 거의 쌈닭이 됐다. 여기저기서 부당하게 나를 자극하면, 곧바로 들이받았다. 변명하자면 나름의 기준이 있었고, 모든 상황이 완벽하게 링으로 갖춰졌을 때 싸우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하긴 했다. 나의 싸움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으니까.
어느 순간엔 열 받아서 따지는 나를 그가 말리는 상황까지 왔다. 변화를 시작한 건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중간이 사라져버린 거였다. 감정 표현의 시원함을 알고 나니,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진 후에도 표출의 극단적 부작용 때문에 긴 시간 애를 먹어야 했다.
그 와중에 씁쓸한 건 쌈닭이 되고 나서는, 사람들이 날 우습게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화내지 않을 때는 만만하게 보고 온갖 일들을 시키던 이들이, 몇 번의 폭발 후에는 갑자기 나를 배려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들이 어이가 없고 화가 나기도 해서, 어지간하면 감정을 더 숨기지 않았다.
확실히 화를 내지 못해 화병이 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화를 내고 감정을 표출하는 게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여기저기 들이받고 다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건 나를 위한 훈련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잘 화내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 나이를 먹어가며 분노의 적성 선을 찾고, 표출의 정도를 알아가고 있다곤 하지만, 순간순간 감정을 추스르는 훈련은 아무래도 죽기 직전까지 해야 할 것 같다.
다만 대외적인 이미지라는 게 있으니 앞으로는 아주 조용하게 남들은 모르게 화내는 방법을 더 연마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그렇게 하면 내 분노 때문에 함께 있는 사람이 불편할 일은 없을 테니까. 뭐, 이것도 부작용의 일환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