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이, 끝내는 건 한순간

by 흐를일별진



홀린 듯 마음을 열었던 이상형과의 짧은 만남을 끝냈다.

그는 충분히 고민했을 것이고, 나 또한 그 무렵에는 그와 비슷한 마음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휴대전화 번호를 지우고 SNS의 교류를 끊어내고, 메신저의 아이디를 삭제했다.

그 모든 과정은 불과 1분을 넘기지 않고 이뤄졌다. 순식간에 누군가의 흔적이 휴대전화 속에서 모두 사라져 버린 거였다. 표면적인 관계를 끝내는 일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니… 나는 허무함을 숨길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지웠다고 해서 마음에 남은 것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래 만난 사이었다면 감정의 잔상을 지워내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다행히 나의 감정은 짧은 시간에 타오르고, 급격히 작아져버린 불씨와 같았다.





생각해보면 남녀 사이의 관계라는 건 어떤 식으로든 노력이 필요했다. 둘 중 한 사람이 관계의 끈을 놓아버려도, 남은 이가 필사적으로 끈을 잡고 있는 다면 어떻게든 관계가 유지됐을 거다. 같이 있으면 즐겁고 편안한 ‘친구’라는 명목으로. 그러나 두 사람 모두가 쥐고 있던 끈을 놓아버린다면, 그 관계에는 남아있는 의미가 없었다.

언제 어떻게 물거품으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 남녀 사이의 감정이었다. 그저 원래대로, 각자의 삶을 살았던 남남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시작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관계를 끝내는 건 한 순간이라 해도 새롭게 시작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경우는 주변 모든 상황의 주파수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야지만, 순간의 감정이 애정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주파수가 맞는 일은 희박하기 때문에, 사실상 내 마음은 거의 닫혀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시작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정말 운명처럼 마음이 열리는 게 아닌 이상.

끝내는 것만큼 시작하는 것도 쉬웠으면 좋았을 텐데.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란 건 정말 복잡하게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이 편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끼고 재고 방어하는 기술만 늘어서 시작이 어려워지기만 한다. 내가 나 자신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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