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제주도 고산리에서 한 달을 머물렀을 때. 나는 제주에서의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흐른다는 것을 불안해했다. 기억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이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기간 동안 특별한 방법으로 제주를 남기기로 했다. 카메라 렌즈를 거치는 한 장의 사진으로 기억을 남기는 게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 날씨, 색깔, 그 장소를 둘러싼 모든 감각을 몸에 새기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제주 어디를 가든 긴 시간을 들여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스케치로 남겼다. 우리가 머물렀던 집, 성산 일출봉, 방주교회, 혼자 갔던 신창리 해안 길, 카페 다금바리스타에서 본 차귀도 포구. 그리고 황우지 해안까지. 단 그 스케치에는 어떠한 색깔도 입히지 않았다. 그저 미완성의 그림으로 남겼을 뿐.
그 무렵 내 '여행 스케치'의 의미는 이러했다. 얇은 펜이 종이를 스치는 감각은 장소를 떠올리는 초의 심지가 될 것이고, 그 심지에 불씨를 지피는 것은 머릿속으로 채우는 그곳의 색깔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난 후, 완성된 그림에서 추억을 찾는 게 아니라 미완성의 그림에서 그날의 모든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실제로 3년이 지난 지금.
가장 선명했던 제주 살이의 순간은, 지금도 내 방 곳곳에 붙어 있는 몇 점의 스케치를 통해서만 떠오른다. 한 달 동안 찍었던 수백 장의 사진보다, 긴 시간 공들여 응시했던 그날의 여행 스케치가 내 추억을 더욱더 빛나게 하고 있다.
찰나의 순간을 찍어내는 사진이 아닌, 마음에 드는 장소를 충분히 보고 받아들이고 ‘눈’으로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마주한 풍경에 대한, 가장 완벽한 찬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