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도둑질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우리 반에는 상당히 예쁘고 똑 부러진, 소위 말해 모범생인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나에게 함께 도둑질을 하자며 충격적인 제안을 해왔다. 자신은 이미 몇 번 해봤고, 나는 그저 망만 봐주면 된다면서 도둑질이 끝나면 간식거리를 나눠 주겠다고 말했다.


사실 머리로는 도둑질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동경하던 아이였고, 직접적으로 물건을 훔치는 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은 마음속의 죄책감을 줄어들게 했다. 그리고 실제로 도둑질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우리는 그날을 평생의 비밀로 마음속에 묻었다.



그러나 얼마 뒤 문제가 생겼다.


엄마의 귀에 나와 친구의 도둑질 이야기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본인의 엄마에게 도둑질을 걸린 친구가 핑곗거리로 제시한 게 나였다. 내가 자신을 부추겼고, 본인은 하기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물건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며, 모든 게 나 때문이라 말했다고 했다. 그 친구의 엄마는 곧바로 우리 집에 전화를 했고, 다짜고짜 엄마가 당신의 딸이 내 딸을 망쳤다며 화를 낸 상황이었던 거다.


엄마가 화 난 건 이해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억울했다. 물론 도둑질을 한 건 인정하는데, 최소한 내가 주도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억울하다 말했고, 그간 있었던 그 친구의 모든 일을 털어놨다. 그러나 돌아온 건 이해가 아니라, 차갑고 단호한 훈계였다.


"남 탓할 필요 없다. 친구가 잘못하고 있는 걸 알았으면 말렸어야지. 같이 했다는 건 너도 잘못이 있는 거야. 너한테도 책임이 있어."


나는 엄마가 미웠다. 내 편이어야 할 사람이 남의 편만 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팔아넘긴 친구도 죽도록 미웠다. 혼나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한 건 인정해야지.



그날의 사건은 억울함만 남긴 채 끝이 났다. 하지만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남 탓을 하지 않는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요령껏 행동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탓하지 않는 척만 했다. 적당히 반성하는 척하면 엄마가 화를 내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의 신념이 고스란히 내 것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결국 나 또한 매사 문제가 생기면, 책임감 없이 남 탓을 하는 일을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가졌던 신념이, 살면서 왜 도움이 되는지 체감하며 깨닫게 된 거다.


어떠한 상황에 감정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객관적으로 잘잘못을 따지고 인정할 건 인정하는 일. 그렇게 상황을 마주하다 보면 마음의 정도라는 게 유지됐다. 절대 내 잘못은 없다고 믿었던 사건에도, 곱씹어보면 원인 제공을 했거나 내가 문제가 된 경우도 있었으니까. 사람 일에 100% 내 잘못이 없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 거였다.





그러나 남 탓을 하지 않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조금씩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과도하게 나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됐다. 남 탓을 하지 않기 위해 굳이 내 잘못을 거대하게 부풀리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타인에게 화내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나를 만만하게 생각했다. 한 번은 잘못을 인정하는 편이었던 내가, 모든 문제의 책임을 뒤집어쓴 적도 있었다. 솔직히 바로 잡을 기운도 없었다. 그냥 그 모든 상황도 결국 내 탓이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나 자신은 서서히 썩어 들어갔고, 나는 남들보다 한 없이 부족한 사람으로 남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너무 늦기 전에 부작용을 알아챘다. 내가 추구하는 신념이 마냥 나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요즘은, 남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긍정적인 습관은 유지하되, 정말 내 잘못이 없다면, 그때는 남 탓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굳이 타인의 잘못을 뒤집어쓸 필요도 없고, 그렇게까지 착한 사람으로 남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씁쓸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나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는 걸 요즘 들어 여실히 깨닫고 있으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