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얼마 전, 무뚝뚝함의 극치를 달리던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통 동생이 먼저 전화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인데, 주로 "잘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남자 만나라"와 같은 잔소리를 하려고 연락하는 놈이라, 나는 별 기대 없이 통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동생의 첫마디는 의외였다.
“누나 며칠 전에 음력 생일이었다면서. 갖고 싶은 거 있나”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 나조차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음력 생일을 동생 놈이 챙겨주다니. 심지어 자기 인생 살기도 바쁜 애가 갖고 싶은 게 있냐며 오빠 같은 말을 하다니. 나는 이미 선물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동생과의 통화를 통해 모처럼, 극도의 행복함에 취했으니까.
그렇게 짧은 통화를 끝내고 나니 문득 웃음이 터졌다. 분명 놈의 전화에는 배후가 있었다. 아주 귀엽고 아담하고 예쁜, 새로 생긴 내 여동생이자 곧 올케가 될 아이였다.
동생의 상황이 눈에 훤히 그려졌다. 무뚝뚝한 동생이 “누나 생일이란다”하고 툭 던지면 그 아이가 전화를 부추겼을 거다. 가족들한테 연락 좀 하라고, 표현하라고. 그럼 동생은 그제야 느릿느릿 전화를 걸 것이고, 늘 그랬던 것처럼 무뚝뚝하게 통화를 끝내고 나면, 그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앞으로는 좀 다정하게 말하라며 귀여운 핀잔을 주겠지.
실제로 동생이 살가워진 건 그에게 연인이 생기고 난 이후였다. 언제부턴가 평소보다 잦은 횟수로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안부를 물었으니까. 엄마 아빠를 변화시킨 게 나였다면 동생을 변화시킨 건 사랑이었다. 너무나도 이상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아이가 고마웠다. 절대 쉽지 않은 스타일의 내 동생을 한결같이 사랑해주는 모습이 대단했고,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전하면서도 기죽지 않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너는 왜 내 동생 같은 애를 만나냐" 물은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그 아이는 "세상에 오빠 같은 사람이 없어요."라는 (당황스러운) 대답을 했다. 허허.
사실 6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은, 나에게 아픈 손가락과도 같았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돌아다녔던 나와는 달리, 동생은 너무 빨리 철이 들어 버린 케이스 중 하나였으니까. 한창 클 무렵, 부모님의 맞벌이로 혼자 있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아마도 그는 스스로의 감정과 욕구의 제어법을 반 강제로 익혔을 거다. 나는 동생이 좀 더 철 없고 무모하게 젊음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못했던 걸 수도 있고.
그런 남동생이 어느 날 갑자기, "만나고 싶다, 곁에 두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소개시켜 준 거다. 당연히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처음부터 그 친구가 고맙고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생각이 깊고 진중한 동생이 데려온 아이니, 솔직히 더 볼 것도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을 믿고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볼 뿐.
다행히 서로에게 첫 사람이었던 둘은 몇 년째 알콩달콩 투닥거리며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하고, 각자의 꿈을 향해 힘껏 밀어주기도 하면서. 동생은 점점 안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고, 선물처럼 우리 가족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그 아이도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사랑하는 남동생과 사랑하게 될 나의 여동생.
시누이와 올케라는 관계를 넘어서, 어쩐지 잃어버렸던 가족을 되찾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그 아이는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가 됐다.
나는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예쁘게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존재가 그들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고로 시누이란 동생(남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정답이랬다. 고로, 나는 지금부터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