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어릴 때부터 나는 죽은 동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죽음이 우리 인간의 탓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동물들을 땅 속에 묻어주고 애도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애도의 순간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는데, 아마 그때가 태어나 처음으로 죽은 동물을 땅에 묻었던 순간이었을 거다.
친구의 생일을 맞아 아파트 옆 동에 위치한 그의 집에 가던 길이었다. 우연히 길 위에 죽어있는 비둘기를 발견했고, 나는 생일파티 내내 그 비둘기를 신경 썼다. 그래서 파티가 끝나자마자 친구의 어머니께 상황을 설명했다. 죽은 비둘기를 봤고, 허락해주신다면 친구들과 함께 묻어주러 가고 싶다고 말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비둘기를 감쌀 부드러운 종이를 마련해 주셨고, 각자 착용할 비닐장갑도 하나씩 챙겨 주셨다. 우리는 장비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하지만 막상 죽은 비둘기 주변으로 모여선 우리는, 한참을 아무것도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묻어주겠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그 비둘기를 직접 만지기에는 겁이 났다.
그 와중에 나는 책임이 막중하다 생각했다. 비둘기를 발견한 것도, 친구들을 데려온 것도 나였다. 결국 그 상황에서 먼저 나설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애써 태연한 척 손을 뻗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비둘기를 감싸 들었다. 부드럽고 묵직했다.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죽은 게 맞는데 살아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마도 그 무렵의 나는, 영혼이 없는 죽은 동물은 그만큼 가벼울 거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느껴지는 묵직함이 당황스럽고 무서울 수밖에.
우리는 비둘기를 양지바른 곳으로 옮겼다. 땅을 파고 나름 북쪽으로 머리를 향하게 한 뒤 곱게 흙으로 덮었다. 그리고 모두들 무덤을 둘러싸고 짧은 기도를 하면서 나름의 애도를 표현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뒤, 우리는 서로를 자랑스러워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었다.
사실 어릴 때는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두려움이 앞섰다. 무서움을 참아가며, 땅을 찾고 묻어주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러나 삼십 대가 된 지금까지 꾸준히 죽은 동물들을 묻어주다 보니, 이제 두려움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다만 종종 눈을 뜨고 죽어있는 이들을 보면 그저 마음이 먹먹해질뿐. 그래서 가끔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죽은 동물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저들도 살기 위해 사람이 있는 이곳까지 왔을 텐데.
동물들의 죽음에 인간이 연루되어 있다는 나의 믿음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졌다. 그래서 죽은 동물을 묻어주는 일에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이 있건 없건 내 나름의 애도가 끝나면, 곧바로 그들을 종이로 감싸서 땅에 묻었다. 가끔 실제로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저 나만의 애도 방식을 충실히 따를 뿐이었다.
물론 함께 있던 친구가 죽은 동물을 너무 무서워하는 경우에는, 동물이 있던 위치를 기억해 놨다가 추후 다시 돌아와 동물을 묻었다. 그렇게 해야만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만의 도덕적 관념에 따른 강박 증세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 강박을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언젠가는 나도 죽게 될 거다. 다만 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장례식에서 충분한 애도를 받으며 떠날 수 있겠지. 하지만 이 땅에서 함께 살았던 몇몇 동물들은 그러한 운명을 타고나지 못했다. 작고 연약한 대다수의 동물은, 인간에게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버려지거나 소각됐으니까. 나는 그런 식으로 이 땅에서 사라지는 생명이 안타까웠다. 그러니 단 한 사람이라도 죽어가는 동물을 기억하고 애도한다면, 그래도 그 동물들의 마지막은 그나마 따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해 애도하는 이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