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슬퍼하는 이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단호한 위로

by 흐를일별진




한 친구가 위기를 겪었다. 사랑만으로 결혼의 행복을 약속하는 남자와의 의견 대립이었다. 여자에게 결혼은 현실이었다. 여자는 무조건적인 사랑보다 현실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근본적인 결혼관 차이는 두 사람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둘은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한 친구가 헤어졌다. 처음엔 모든 것을 줄 것처럼 사랑을 표현하던 남자는, 자기 일이 힘들어지자 제일 먼저 여자를 내려놓았다. 여자는 방치됐고, 그 와중에도 힘든 그를 배려해 화 한번 내지 않았다. 여자의 마음은 서서히 썩어들어갔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별을 말했다.


한 친구가 헤어졌다. 친구같이 편안한 관계를 이어가던 두 사람이었지만, 여자에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과 억압. 남자는 숨이 막혔지만, 긴 시간의 연애에 대한 책임감에 이별을 고하지 못했다. 그러나 헤어짐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싸움이 생겼고, 남자는 이별을 고했다.



근 1주일 사이에 내 주변 많은 이들이 관계의 회의와 상실을 경험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도 함께 무너지고 아파했다. 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연애를 하며 마음 아파하는 걸까.

친구로서 연인으로서의 ‘좋은 사람’이란 다르다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옆에 두는 사람들은 진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진심에 진심을 돌려줄 줄 아는 사람. 그거면 충분했고,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들이 힘든 게 속상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사랑을 하고, 상처받고, 그런데도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는 건 인간이 가진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는 것. 그건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과 상처는 같은 길을 간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 길이 너무 아프고 쓰라려서 그렇지.


한때는 내가 겪었던 이별의 상처를 경험 삼아, 주변 이들을 멋지게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머리를 짜내 도움이 될 만한 말을 찾아내긴 했지만, 어차피 말이란 건 흩어지게 돼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쌓아온 시간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타인일 뿐이었다.


마음 같아선 집 근처로 달려가 그들을 안아주고 위로하고 말없이 곁에 있어 주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근본적인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이별의 상처란 괜찮다가도 불현듯 찾아오고, 아주 평범한 순간에 매서운 바람처럼 심장을 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는 상처를 주변인이 위로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니 모든 위로는 찰나의 순간일 뿐, 이겨내는 건 오로지 당사자의 몫이었다.



어쩌면 사랑이란 습관과 같아서, 그 습관을 끊어내고 고치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 습관처럼 연락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서로를 만나고 보듬고,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이. 그 모든 사랑 기반의 관계가 끊어지는 건, 오랜 습관이 정리되는 것과 같다.


다르게 생각하면 사랑은 습관이기에 끊거나 바꿀 수 있다. 익숙해진 습관을 때에 따라 바꿔 가는 것. 나를 해치는 습관은 고쳐야 한다. 나쁜 습관을 지니고 사는 건,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 습관이 나의 발목을 잡을 뿐, 건강하지 못한 사랑은 독약과도 같다. 나를 위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상처는 피할 수 없다. 사랑과 이별이 그렇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그들이 헤어진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사람들이 아프지 않으면 그걸로 됐다. 나는 그들이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고, 단호하게 마음먹고 습관을 끊어내기를 바란다.


이별에 대한 타인의 위로가 찰나의 순간이듯, 이별의 상처도 결국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