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이별 이야기
나는 어떻게 이별했던가. 문득 옛 생각이 났다.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감정이란 신기해서 애써 그 시절을 떠올리니 그날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첫 번째 사람과 두 번 헤어졌다.
첫 번째 이별은 우리가 함께 있던 밤, 도망칠 곳이 없던 곳에서 일어났다. 그는 덤덤하게 나에게 그만하자 말했고,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첫 사람이자 첫 연애였던 탓도 있지만 나를 사랑해주던 사람이 한순간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너무나도 컸다. 그냥 울었다. 나중엔 서러운 나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더더욱 눈물을 쏟아냈다.
단 한 칸의 원룸에서, 그는 멀찍이 떨어진 채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바라만 봤다. 나는 그런 그 사람을 보며 더욱더 무너져 내렸다.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 다시 생각해. 헤어지지 말자. 미안해 내가 잘할게,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제발 마음을 좀 돌려봐. 나는 못 헤어져. 우리 정말 헤어져야 되는 거야?
화를 냈다가 회유를 했다가 체념을 했다가. 내가 다중인격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지독한 상실의 공포를 경험했고, 완벽하게 이성을 잃었다. 비굴했고 비참했다.
두 번째 이별은 우리가 만난 지 5년째 되던 해에 일어났다.
신천에서 서울대 입구로 이사 가던 날. 그는 이삿짐을 옮겨주고, 뒷정리까지 도와준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밤 나누던 전화 통화로 이별을 고했다. 헤어지자 했고, 새로 이사한 집에는 자신과의 추억이 없어서 다행이라 말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번엔 진짜 이별이겠구나. 첫 이별과 달리 어느 정도는 나 또한 서로의 변화를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알았다. 5년을 보아온 그 사람이 어떤 것에 약한지, 왜 지금 이별을 말하는지, 속속들이 그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별을 늦추고 싶었다. 그는 분명 다음 날이 되면 헤어지자 말한 사실을 후회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혼자 아파하겠지.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시간을 갖자 말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서로에 대해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말했다. 우리는 정확히 한 달 뒤 5월 5일에 만나기로 약속하며 전화 통화를 끝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헤어지게 될 거라 생각했다. 다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보장된 것뿐, 이별에는 변함이 없었다.
무려 5년의 연애였다.
헤어지잔 말을 미루고, 눈을 뜬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나는 무너졌다. 잘 잤어?라는 인사를 할 상대가 없었다. 밥을 먹다가 무너졌다. 무엇을 먹는지, 언제 먹는지 아주 사소한 일상을 나눌 사람이 사라졌다. 밤이 되니 무너졌다. 매일 밤 우리는 한 시간씩 하루에 있었던 일을 공유하곤 했다. 그런데 더는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그는 습관이었다. 그가 군대에 갔던 2년 외에, 우리는 크게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은 나의 이유였고,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한 편으로는 그만큼 간절했던 사람이었기에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체념하기도 했다. 그 사람도 아주 힘든 마음으로 헤어짐의 말을 꺼냈을 테니까. 그 사람이 힘든 원인은 나이기도 했다.
조금씩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래 헤어지자 마음먹을 때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내게 말했다.
그냥 만나지 말고 헤어지자고. 어느 순간 자신의 손가락에 커플링이 없는 게 익숙해졌다며, 약속한 날에 만나게 되면 우리는 헤어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관계는 끝났고 마음도 예전 같지 않으며, 다시 만난다 한들 이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도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5년의 세월은 쉽사리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래, 보지 않는 게 차라리 나았다.
마지막 이별의 통화는 서로를 응원하며 끝났다. 잘 지내라. 응원한다. 그래도 너와 연애해서 다행이었다. 차분하게 할 말을 했고,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잘 참아냈다. 진짜 끝이구나. 내 이십 대의 절반이 이렇게 끝났구나. 눈물은 나는데, 생각보다 마음은 덤덤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결국에는 받아들였다.
5월 5일.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날.
서울에 있기가 힘들었던 나는 대충 짐을 싸 동서울터미널로 이동했다. 포항 본가에서 시간을 보낼 참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함과 동시에 그를 떠올렸다. 그곳은 그와 나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천안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 우리는 늘 동서울터미널을 이용했고, 담배를 피우던 그는 지정된 장소에서 익숙한 자세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날도 포항행 버스를 타러 이동하던 길, 습관처럼 그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그 사람이 있었다. 거짓말 같은 우연한 만남이었다.
헤어진 우리에겐 숨길 수 없는 거리가 생겼다.
우리는 어색하게 마주 보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고, 그는 나의 커트 머리가 예쁘다며 칭찬했다. 나는 그 상황이 조금 어이가 없어서 씁쓸하게 웃고 돌아섰다. 그 와중에 칭찬이라니. 마침 포항행 버스가 들어오던 참이라 급한 척 자연스럽게 버스로 향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심장이 뛰었다. 제대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빛나던 5년의 추억. 그래서 다시 버스에서 내렸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그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는 다시 돌아온 나를 보며 토끼 눈이 됐다. 이상하게도 놀란 그를 보니 마음이 진정됐다.
너와 다시 사귀자는 말을 하러 온 게 아니니 놀라지 말라고, 제대로 인사를 하려고 왔다며, 나는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는 내 손을 잡았고 우리는 악수를 했다. 그게 내가 느낀 마지막 그의 온기였다.
한 번은 구질구질했고 한 번은 최선을 다했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란 없다고 하지만, 나는 내 첫 연애의 이별이 아름다웠다고 믿었다. 최소한 그가 내게 다시 연락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의 '깨는' 연락 후, 내 이별은 엉망진창이 됐다.
이별은 단호해야 한다. 죽도록 매달려 잡아도, 결국에는 비슷한 이유와 시간의 흐름, 소원해진 관계 등 온갖 이유로 다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결국 단호한 이별과 일맥상통한다. 여지없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이별. 서로의 힘든 마음은 각자의 몫이다. 어중간한 미련은 좋았던 기억마저 퇴색되게 만든다.
모든 관계에는 끝이 존재하므로 어차피 끝나야 한다면 미래에 대한 여지 없이 끝내주는 게 맞다. 헤어짐에 미련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