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삶의 모양 속에서
<졸업>이라는 독립영화를 보고 돌아오던 밤.
지하철에서 아이를 챙기느라 고생하는 외국인 부부를 보았고, 나는 칭얼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놀아주며 순수한 행복감을 느꼈다.
추운 가을바람에 옷을 싸매며 걸어가던 길, 주차된 택시 안에서 쪽잠을 자는 기사님을 봤고, 나는 그 기사님에게서 지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뒤이어 내 시선을 빼앗은 건, 두 손을 꼭 잡은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노부부의 뒷모습이었다. 나는 그분들을 앞지르지 않고 걸으며, 노부부의 사연을 상상했다. 누구도 현실은 알 수 없다지만 내 상상 속의 두 분은 너무나도 행복한 한 쌍이었다. 존중과 신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내가 본 풍경은 다양한 삶의 모양이었다. 국적과 인종과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시간이었다. 순수한 기쁨, 고되고도 지친 삶, 함께하는 노년의 인생을 엿보면서 나는 모든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면, 주변의 많은 이들과 그 감정을 나누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쉽게 행복해졌다. 그러니 행복의 일부를 나눠준다고 해도, 결국 나는 다시 행복해 질 거다.
스치듯 겪은 일상의 한 부분에서 깨달은 건, 역시 세상은 다채롭고 반짝거린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누군가의 어둠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아아 바람은 차갑고 그 사이로 조금씩 겨울이 찾아오는데, 세상은 여전히 빛나고 있구나. 아무래도 오늘은 어디선가에서 슬픔을 억누르고 있을 이들을 위해 짧은 기도를 해야 할 것만 같다.
나는 진심으로, 이 세상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