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타이밍은 가혹하다
버스를 타고 합정역으로 이동하던 길. 나는 운전석 바로 뒤 제일 앞 좌석에 자리를 잡고 창밖 구경을 시작했다. 잘 정돈된 도로 양옆으로 나무들이 줄지어있고, 각 나무의 잎은 가을을 맞아 조금씩 물들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높았고, 그 풍경을 보면서 새삼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서울에서 제대로 된 단풍 구경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가을을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늘 계절이 무르익기 전이었고 타이밍을 노리며 일상을 보내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땅에 떨어져 말라버린 단풍잎만 마주했다. 가을을 맞아 색색의 옷을 입었던 나무들이 조금씩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또다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음을 후회하곤 했다.
살다 보니 인생에 있어 제일 중요한 건 타이밍이더라. 모든 조건이 맞춰져 있다고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일은 틀어지기 일쑤였다. 사람, 관계, 일, 감정, 꿈. 모든 것이 그랬다.
인생의 여러 가지 타이밍 중에서도 내가 제일 힘들어했던 건 ‘감정의 타이밍’이었다. 매년 바뀌는 계절을 놓쳤던 것처럼, 나는 내 감정과 관계의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모처럼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때는 감정이 무르익기 전 혹은 누군가의 감정이 시작되기 전이었고, 누군가의 감정이 나를 향할 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었으니까.
우정이든 사랑이든, 비슷한 속도로 함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도 나는 타이밍을 놓쳤다. 걸으며 마주하는 인생의 사건들 속에서 이것저것을 챙기느라, 정작 곁에 있는 이들을 챙기지 못했다. 상대방에게 힘든 순간이 생겨 그 사람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생각한 위로의 타이밍은 늘 어긋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모든 것이 정리된 후에야 ‘아, 내가 또 누군가를 놓쳤구나.’ 깨달으며 가혹한 감정의 타이밍을 속상해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감정을 키워야 할 때와 막아야 할 때 그리고 내려놓아야 할 때를 전혀 몰랐다. 순간순간의 상황에 집중할 뿐 타이밍을 찾는 요령도 없었고, 끈기도 없었다.
그 와중에 우습게도, 벌어진 결과에 대한 납득은 남들보다 빨랐다. 속상해하다가도 어차피 되돌릴 수 없다며 포기해 버리고, 가혹해 하다가도 이런 게 인생이라며 받아들였다.
어쩌면 그래서, 내 감정의 타이밍에는 변화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와 배운다 한들 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봐. 또 상황을 그냥 받아들여 버렸네.
아, 나는 어쩔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