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작
나는 지독한 집순이였다.
어지간하면 잘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최대한으로 즐기면서 살았다. 고양이와 함께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를 해야 했고, 청소가 끝나면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하고 나면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가 모자랐다.
무언가를 하는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좋아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몇 시간이고 공상에 빠지는 걸 즐겼다. 나에게 집은 최고의 놀이터였고 휴식처였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이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은 필요하지 않았다. 혼자서도 충분히 감정을 제어하고 때로는 증폭시키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난 날이면 그다음 날은 무조건 쉬었다. 일을 쉬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사람으로 채운 시간은 반드시 리셋되어야만 했다.
그랬다. 나는 그랬었다.
올가을. 수필집을 내고 당황스러울 만큼 많은 사람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놓쳤다고 생각했던 인연이 직접 구매한 책 사진을 보내주며 나를 응원하기도 했다. 축하한다, 사인해달라, 이제 얼굴 좀 보자. 애정 가득한 그들의 표현을 나는 선뜻 기뻐하며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두려웠다.
괜히 책을 냈나. 이런 관심 부담스러운데. 조용히 넘어갈 걸 그랬나. 나는 그들을 모른 척했는데. 이렇게 축하받고 응원받아도 되나. 해 준 것도 없고 받은 만큼 돌려줄 수도 없는데. 행복한데 너무 무섭다.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 두려운 것 같다. 내가 누군가의 고마움이 되고 힘이 되고 의지가 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지만, 상황이 반대가 되면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나는 사랑을 주면서 그것을 돌려받고자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도 돌려받을 생각으로 마음을 준 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주는 마음은 나와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머리로는 예상을 해도 마음으로는 영 받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지독한 집순이였던 나는, 나를 향한 타인의 애정도도 적정선의 수준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최소한 내가 그렇게 믿을 수 있게끔 말이다. 그런데 그 노력이 요즘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본다면 책이 인정받는 즐겁고 보람찬 시간이 이어지는 거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행복의 척도를 따져본다면 나는 요즘 그 어느 떠보다 행복하다. 그건 확실하다. 언젠가의 글에 썼듯 이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서 그만큼 두렵고, 나를 좋아해 주는 이들을 실망하게 할까 봐 무섭다.
그동안은 혼자 있는 집순이가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사람에게 위로받고 그 마음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난 시간을 다시 리셋하는 게 아니라 흘러넘치게 채우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 기준에선 절대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수필집 한 권이 나를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바로 지금을 기회로, 두려움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나는 변화를 겪고 있고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글을 쓰는 지금, 명확하게 떠오르는 마음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는 것.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것. 소중한 이들이 내 두려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 누군가가 나를 밖으로 끌어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걸 바라도 되는 걸까.
누군가에게 기대도 되는 걸까.
뭐, 이런 생각도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