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마음

나와, 그대들을 응원하며

by 흐를일별진



누군가가 나에게 꽃 선물을 좋아하냐 물으면,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꽃이란 시들게 되면 버려야 하는 거니, 차라리 책 한 권이 더 좋다고 말이다.



얼마 전, 한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수필집을 선물하기 위한 만남이었다. 그 친구는 오자마자 나에게 노란 소국이 담긴 작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책을 낸 건 축하해야 할 일이라며,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른 꽃이라고 말했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너무 행복해서 고맙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우와, 우와”하며 감탄만 했을 뿐이었다. 친구는 좋아하는 나를 보며 덩달아 자신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부터 꽃향기를 맡고 만지작거리고 햇살에 다발을 놓으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기하고 행복하고 들뜨는 기분이었다. 내가 꽃을 받아보다니.


친구는 꽃 선물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소소한 일상의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꽃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꽃을 고르고, 포장된 꽃을 들고 그에게 가는 과정 자체가 자신도, 상대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꽃 선물을 하고 받는 일에 성별과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친구의 철학은 나를 바꿔놓았다. 비싸고 비합리적인 선물이라 생각했던 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만 해도 그렇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사랑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꽃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수필집의 사진을 제공해준 작가 오라버니에게서도 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라버니는 자신의 전시 오픈과 동시에, 한 관람객에게서 꽃 선물을 받았다. 그는 태어나 단 한 번도 꽃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전시 첫날을 마무리하고서도 오라버니는 계속해서 꽃 선물 이야기를 하며 감동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남자도 꽃을 선물 받으면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마음을 받는 일에 성별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거구나. 나는 오라버니를 보면서 꽃과 마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다.

추측이긴 한데, 나는 그가 힘든 마음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안쓰러웠고 이상하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는 서른을 앞두고 나름의 큰 결정을 했다. 긴 시간 이어온 습관을 깨는 것. 그는 힘들겠지만, 나는 그의 결정이 축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시기에 이룬 변화는 앞으로 그를 더 빛나는 곳으로 인도할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성장한다. 지금의 경험은 그를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 거다. 나는 그의 미래를 응원하고 싶었고, 괜찮다 너는 옳은 선택을 했다 앞으로는 더 잘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꽃을 선물하겠다고 마음먹고, 생각을 정리함과 동시에 빠르게 꽃집을 찾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내 시선을 빼앗은 튤립 한송이를 골랐다.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단 한 송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꽃을 고르고 고민하고 포장된 꽃을 손에 쥐는 순간까지 나는 그 사람을 떠올렸다.


그제야 친구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꽃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든, 꽃이라는 건 그 사람을 생각하는 과정 그 자체이기도 했다.


물론 나와는 달리, 그 사람에게 꽃 선물이 어떤 의미가 됐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꽃에 담긴 마음이 조금이나마 그와 함께하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 그 꽃이 시들지라도 소중한 마음의 잔상은 그의 곁에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