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시절

제주는 행복이라

by 흐를일별진



누구에게나 행복했던 시절이 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닥친 과분한 기쁨에 충만할 때. 내게 그 시절은 제주에 있던 한 달 반. 자연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던, 바로 그때의 나날들이었다.



내 인생은 스물아홉, 제주에 가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원래부터 자연을 좋아히긴 했지만 이렇게 빠져들 줄은 몰랐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다라는 게 얼마나 깊이 있는지, 사람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제주에 가기 전까지, 나는 그 모든 행복의 기운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우리는 늘 해가 진 바닷가, 그 차가운 모래에 앉아 하늘의 별을 세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소중한 이의 어깨에 기대 시간을 보내던 순간들. 성별도 나이도, 우리에게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월정리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달이 머무는 바닷가 앞에서 우리는 한 없이 자유로웠다. 서로의 꿈을 나누었고 철썩이는 파도 앞에서 영원을 약속했다.


그런데 그 시절의 기억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이야.



얼마 전 제주의 인연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차라리 제주에 가지 않았다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나친 행복이 우리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행복을 몰랐다면 슬픔은 없을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었다.

스물아홉 전후로 인생이 나뉜다는 건 진짜 행복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과 같았다. 살면서 우리가, 하늘과 바다와 공기와 이 세세한 자연의 흐름에 관심을 가질 일이 얼마나 될까. 제주는 나에게 세상 모든 존재의 가치를 설명해 준 것과 같았다. 무생물과 생물을 넘나드는, 그 이상의 가치.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는 곳.


바다 앞의 나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밝고 씩씩하고 어디에서도 드러누울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서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금 이 순간. 행복했던 시절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웃을 수 있는 건, 끝은 끝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일 거다. 그리고 행복을 알기 때문에, 인생의 쓰디 쓴 슬픔에도, 행복을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나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소중한 이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못난 나는 그들을 챙기지 못했지만, 그들은 늘 나를 찾고, 응원하고 사랑해주고 있었다. 내 마음이 무거워질 정도로.

그래서 이 순간, 나의 슬픔도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안다.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그 자체로 감사할 일이라는 것도 안다. 언제든 마음을 다해 찾아가면 그뿐,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