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다 부질없더라
얼마 전. 심각하게 독감을 앓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겪어본 고통이라면 고통. 늘 그랬듯 익숙하게 혼자 참아 넘긴 3일이 문제가 됐다. 나는 독감이 구석구석 깊이 퍼지도록 천천히 기다린 셈이었고 이후엔 그 세다는 주사약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결국 약이 듣지 않아 40도에 가까운 고열로 위기의식을 다시 한번 느끼고서야, 나는 응급실을 찾았다. 병원 관계자는 몇 번이나 보호자가 올 수 없는지 물었고, 나는 그저 혼자 산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이 아득하고 몽롱해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와중에도 격리 병실로 옮겨지는 내가 웃겨 헛웃음이 나왔다. 바이러스 덩어리가 되었구나. 이거 이야깃거리가 되겠다 웃으며 한 번쯤은 겪을 만하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몸은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피가 새어 나올 정도의 굵은 바늘로 링거를 맞고 온갖 합병증 검사를 하고 땀이 시트를 적실 정도로 열이 올랐다 내렸다. 다행히 긍정적인 결과와 한결 편안해진 몸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태어난 기분. 억지로 끌고 가던 인생의 무언가가 턱 하고 끊어져 버린 기분. 앓기 전의 나와 앓고 난 후의 나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상태가 진정됐다고 생각하고도, 나는 꼬박 2일을 더 앓았다. 나에게 독감은 큰일이었다. 겪어본 적 없었고 혼자 모든 걸 감내해낸. 어쩌면 서글픈 경험이기도 했다. 사람은 큰일을 겪고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는데, 내 마음의 변화도 이상한 기분도 어쩌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다.
독감을 앓던 그 기간에도 나는 누군가의 하소연을 들어야 했고, 직장에서의 성과를 부러워해 주고 응원해야 했으며, 몸이 아파 연락하지 못한 것을 해명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벌어진 모든 상황은 내 탓이었다.
전화는 받지 않으면 그만이었고 문자는 미뤘으면 됐고 메신저도 의식하지 않으면 됐을테니까. 그러나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이 타이밍에 내가 그들을 등한시하면 언젠가 나도 버림받게 될까 봐.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그들을 바라본 대신에나는 나를 바라보지 못했다. 그들은 내 상황에 큰 관심이 없었고 나도 내 진짜 마음을 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도 걱정이야 했다. 하지만 한 두 번의 걱정 뒤 돌아온 건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였다.
정작 다음 날 너무 아파서 끙끙거릴 때는 그들 중 누구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내 탓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기대했었던 것 같다. 부끄럽고 화가 나게도 말이다. 몸은 좀 괜찮아졌냐. 오늘은 어떠냐는 다정한 한 마디.
그날 하루 종일 다시 병원에 가야되나 어떻게 해야되나 고민하며 끙끙 앓던 동안에도 내 휴대폰은 잠잠하기만 했다.
포항에 있는 한 친구는 늦은 밤 내게 전화해 울었다. 혼자 얼마나 힘들었냐며 고생했을 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의 말에 눈물이 터졌다. (너무 아팠어. 정말 무서웠어. 외로웠어.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결국 괜찮다 나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같이 울면서. 내가 원한 건 이거였는데.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난 것 같다.
가뜩이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느라 머리가 아픈데 요즘 들어 행복해져 보겠다고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을 썼다. 확신 없는 걸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이번엔 따뜻해져 보겠다고, 변해보겠다고 혼자 너무 많은 애를 쓴 것 같다. 다 내려놓으면 그뿐인데. 관계와 가까워지니 결국, 또 다시 튕겨져 나왔다. 나는 이래서 안 되는구나 싶은데, 온몸과 마음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 기운이 다 빠져나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