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없는 누군가의 정당화

발전하고 싶어서

by 흐를일별진



발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내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사람의 성장이란 여러 번의 경험이 쌓여서 완성되는 건데, 마음이 급하고 욕심이 과해서 나를 힘들게 만들 때도 있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얼마 전 방송작가로서 주가 되는 영역이 예능에서 드라마 타이즈로 바뀌었다. 책을 쓰고 영화를 많이 봤다고 자부했던 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예능 대본과 드라마 대본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비교 대상이라고는 이미 경력이 많은 선배와 탄탄하게 쌓인 이전 대본과 완성된 드라마뿐. 비교하는 게 좋지 않은 건 알지만 나에겐 가이드가 필요했다.


신입이 자신을 경력자와 비교하는 일. 확실히 자극은 되지만 가끔 착각을 하게 하더라. 내가 초짜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나는 왜 이거밖에 안 될까. 왜 저 사람들처럼 못 하는 걸까. 내가 쓰는 건 왜 다 이상한 거 같지? 뭐가 잘못된 걸까.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데. 어떻게 하지. 나는 내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간절할수록 자책은 심해졌고 욕심이 과할수록 더 빠르게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내 이야기를 아는 친구들은 그래도 너는 잘 쓰는 편이다 잘할 거다 위로했지만 솔직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업무에 있어 현실은 누군가의 가능성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프로그램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촬영은 이어지며 그에따른 시청률도 오르락 내리락 제작진을 압박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버벅거린다는 건 또 다른 누군가가 고생한다는 소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족함은 대외적인 문제로 퍼져나간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언젠가는 발전할 거라 치자. 그런데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니 그 과정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심지어 그 부담에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생각이 많아지는 게 아닐까. 어쩌면 나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작 책 한 권 냈다고 문장에 대한 과한 자신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결국 자만이었을 그것. 그래서 이런 무력감이 더 힘든 걸 수도 있다.


급격한 자아 성찰이긴 한데, 그렇다면 이 부담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겸손하지 못한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입어야 자신을 돌아본다. 이 과정 자체가 성장을 위한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코앞의 성장은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성장은 이미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받아들이고 부담을 내려놓고 지금의 곱절을 노력하는 게 답이라는 걸 알지만.


하! 아오! 마음이 생각처럼 안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