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다리질 못하니

시작된 마음이 제어가 안돼서

by 흐를일별진



친구가 물었다. 넌 왜 그렇게 기다리질 못하냐고. 사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굳이 좋게 말하자면, 또 다른 친구는 내가 자존감이 높아서 그런 거란다.



이전에는 긴 시간 동안 마음을 고백하지 않고 짝사랑하는 상대를 지켜봤다. 크게 표현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언젠가 그 사람이 날 바라봐주기를 바라면서 친구인 척 동생인 척 누나인 척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다 그 사람에게 연인이 생기면 그제야 내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종종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기도 했다. 결국 표현하지 않은 나는 그동안의 어떤 사랑도 이뤄내지 못했던 거다.


서른이 넘고, 서른셋이 되면서.

사실 여름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모종의 사건을 겪고 인생은 짧으며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실감해서일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겁나지 않았다.

물론 천천히 시간을 두고 관계를 이어간다면 자연스럽게 호감이 생기고 깊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나에겐 여러 번 만나며 의미없는 연락을 주고 받고, 피차 끼고 잴 시간이 없었다. 후다닥 마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고백해 버리고 상처받고 극복하면 끝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고백이란 건 정답이 두개 뿐이고 좋든 싫든 결과는 심플하게 정해지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이기적일 수도 있다. 마음의 속도는 모두가 다른 데 내 속도를 강요하는 걸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 속도가 빠른 걸, 나도 어쩌질 못한다.


보통 내 사랑은 시기의 차이일 뿐 상대의 단점을 찾고 부정의 단계를 거치고,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되면서 확신하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를 좋아한다 생각하는 건 그 사람의 전부를 이해하고 맞춰낼 용기가 생겼다는 소리다. 마더 테레사도 아니고... 오만이긴 한데, 내 사랑은 그랬다. 그러니 어중간한 상태로 마음을 숨겼다가는 다른 시작을 꿈꿀 수도 없었다. 끊어내지 않는 한, 한 번 준 마음은 다른 사람과 나뉘지 않았으니까.



물론 최근의 사례는 좀 달랐던 것 같긴 하다. 애초에 확신이 없었고 내 마음을 나도 몰랐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친구를 잘 알지도 못했고 그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아니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좋아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애를 왜 그렇게 신경쓴 걸까. 왜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걸까. 도대체 왜, 그 아이의 행복을 위해 곁에서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걸까. 글로 남겨도 모르겠네.

생각해보면 언젠가의 글에 썼듯 사랑이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을 모성애나 인간애에 가까운 감정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과 다른 말을 했고 알게 모르게 친구라며 선을 그었던 게 아닐까. 우습게도 그 선을 넘은 것도 나지만.

그러나 마음을 정의하는 데 시간이 걸린 대신 끊어내야겠다는 결심은 한순간이었다. 주저 없이 고백했고 깔끔하게 끝났다. 아주 속이 시원하게.


지금은 웃음이 나온다. 서른셋에 조심성도 없이 들이받고 상처받고 얼마 안 가 멀쩡해지다니. 나이 든 게 이런 건 좋다 싶다. 매사 정리하는 게 빠르다.

그 친구는 즐겨야 할 나이인데 나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었다. 마음을 숨기고 친구로 남았다 해도 난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무엇보다 내가 힘들었겠지. 어중간하게 마음을 막고 숨겨가며, 혼자 상처받고 내 나이를 자책하고 다른 사람에겐 눈길도 주지 못했을 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올해는 글렀나 보다. 내년에도 일이나 해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막상 지금, 이 순간은 건강하게 사랑받은 사람과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끼고 재지않고 좋으면 좋은대로 마음껏 마음을 퍼주면서 말이다.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남겨서 그런 건가? 기분이 이상하네. 뭐, 글쓰기엔 안성맞춤인 감정이다. 그 와중에 글이 술술 써져서 금방 또 행복해졌다. 아주 소소한 행복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