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의 비행운
나의 하루 루틴은 일반적인 회사원들과는 다르다. 얼마 전 지독한 독감을 앓고 밤샘을 피하게 되면서이제야 안정을 찾은 나만의 루틴.
아홉 시쯤 일어나 풀어헤친 머리를 질끈 묶고, 온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쓸고 닦고 환기를 하고. 사랑스러운 내 반려묘의 밥과 물을 챙기고 가볍게 그와 놀아주면서 시작하는 하루. 8평짜리 작은 방이지만 제일 좋은 건 햇살이 깊게 들어온다는 거다.
(어차피 출근이 늦어서 아침 루틴은 거의 동일하다)
대본 작업을 위해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씻고 외출할 것처럼 준비한다. 커피를 내리고 텀블러 가득 물도 채우고 마음을 새롭게 하면 그제야 책상에 앉아 아끼는 기계식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렇게 이어가는 하루에 있어 가장 큰 고비는 오후 두시다. 잠이 몰려오는 시간. 가볍게 몸을 움직여 운동해보지만 결국 따뜻한 바닥에 드러눕고 만다. 잠시 낮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일을 하고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면 고양이와 놀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오늘도 그랬다. 대본을 붙잡고 씨름을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창가로 향했다. 하늘을 봤다. 해 질 무렵의 노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윽고 그 하늘 한 곳에 비행기가 지나면서 형광 주황빛의 비행운이 생겼다. 노을을 가득 머금은 하늘의 길. 그 순간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귓가에는 좋아하는 노래가 들려오고 있었기에 그 찰나의 순간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다만 비행운은 금방 사라졌다. 비행운이 잔류하는 보통의 시간보다 훨씬 짧았던 것 같다. 그래서 구름을 봤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사라졌기에 더 행복했다.
내 것이 된 행복은 언젠가 퇴색된다. 하지만 끝끝내 갖지 못한 행복 혹은 나를 스쳐 간 행복은, 온갖 감정과 뒤섞여 긴 시간 마음에 남아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다른 모양의 행복이 내 것이 된 셈이다. 좋구나. 이런 기분. 그리고 이런 깨달음. 산다는 건 예측이 안 돼서 즐거운 것 같다. 어떤 날에는 죽도록 힘들다가도 어떤 날에는 이렇게 행복해지니까.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순리대로 잘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