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혜화동 엘빈에서
그는 담배를 피웠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담배를 피우던 그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살짝 입술을 열고 후하고 바람을 뱉으면, 그 바람에 실려 나오던 연기가 그렇게 섹시했었다. 안경을 끼고 담배를 피우면서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도 좋았다. 지적인 예술가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고 후하는 입 바람 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콩깍지는 얼마 못가 벗겨졌다.
어딜 가나 흡연이 되는 카페를 찾아야 했고, 카페를 나오면 그 사람 몰래 옷에 배인 냄새를 털어냈다. 길을 가다 담배가 당긴다는 그를 위해 여름이고 겨울이고 멈춰서야 했고, 가끔 우리 집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울 때면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연애 초반에 했던 "넌 담배 피우는 모습이 너무 섹시해"라는 말 때문에 차마 그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내가 변했다고 할 것 같아서.
우리가 만난 지 1년째 되던 날이었을 거다. 당시 그는 커트 머리에 담배를 피우는 여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내게 부족한 건 담배 하나였다. 그래서 1년 선물이자 재미난 해프닝 혹은 개인적인 경험을 내세워 그까짓 담배를 피워 보기로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혜화동 엘빈에서.
그 와중에 내 성격도 특이해서, 어차피 피울 거라면 다양한 맛을 보고 싶었다. 정말 차이가 있을까? 호기심이 폭발했다. 그가 피우던 말보로 레드부터 라이트, 멘솔 그리고 던힐 몇 종류까지 총 다섯 가지 정도의 담배를 샀던 것 같다.
그렇게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그가 불을 붙이고, 나는 살짝 숨을 들이마셔 담뱃잎을 태웠다. 치지직하는 소리. 그리고 깊게 들이마시는 숨을 따라 들어오는 연기. 아주 다정한 교습과 함께 처음부터 속담배를 제대로 배웠다. 기침 한 번 하지 않았고 이건 이런 느낌이구나 이런 맛이구나 알았던 것 같다. 담배 맛을 보고 평가를 하고 그 친구 앞에서 홍콩 배우 흉내도 내고. 맞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했었다.
다만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그 자리에서 풀리거나 뭔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비릿한 담배 향이 손가락에 배어버렸을 뿐, 좋은 건 하나도 없었다. 아, 그 사람이 좋아했네.
그런데 최악은 그 뒤에 일어났다. 몸이 받아주질 않았다. 30분쯤 지났을 때였나.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그날 먹은 모든 것을 게워냈다. 지독한 첫 담배의 부작용.
그는 깜짝 놀랐고 나를 챙기며 연신 사과를 했다. 나는 눈물이 고이고 목이 아프고 몸이 힘들어서 한참을 그에게 안겨 찡찡거렸다. 그러다 내게 사과하는 그가 속상해서 나도 사과를 했다.
"니가 원하는 걸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 해주고 싶었는데 이건 못하겠다. 미안해."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었다 싶은데 그땐 그 모든 감정과 그에 따른 행동이 사랑이라 믿었다.
그리고 몇 달 뒤. 과제가 너무 힘들어서 며칠 밤을 새우고 난 후 나도 모르게 멘솔 한 갑을 샀다. 다행인 건 그 담배는 두세 개비 정도만 태운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는 건데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 마지막 담배의 기억. 20대의 그날.
30대가 익숙해진 지금도 특이한 이름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날 보면 담배가 있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괜히 기분이 좀 이상해진다. 추억이 담긴 사물. 혹은 단어. 그 힘이 너무 강력해서 아주 사소한 순간에도 옛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거다. 다행스러운 건 그 옛 생각이 늘 한가지 방향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나는 참 재밌게 살았구나.
이러나저러나 해도 내 지난 시간은 완벽했구나. 그러니 지금도 언젠가 다시 봤을 때 완벽하게 느껴지겠구나. 바로 오늘 이 순간은 내일의 행복이 되겠구나. 그래, 그러니까 마음껏 지금을 즐겨보자.
뭐, 이런 결론으로 말이다.